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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6-23 00:15

[56편]신필(神筆) 김병연, 검은 매(鷹)의 위력을 시로쓰다
 글쓴이 : 김관동
조회 : 551  
신필(神筆) 김병연, 검은 매(鷹)의 위력을 시로쓰다.|


천년이나 묶은 고목나무를 일필로 휘두르더니 잠시 동안 짧지도 않은 칠언율시(七言律詩)로 시 한수를 써놓았다.

글도 예사의 필치(筆致)가 아니었다.

훈장은 '연적'의 시에서도 놀랬지만 지금 막 쓴 '고목'의 시에서도 놀라움이 더했다.

그의 필은 막힘없는 신필(神筆)이었기 때문이다.

"역시 신필입니다. 나는 이곳에서 오십 평생을 살면서도 고목에 대한 글 한 짝도 생각을 못했는데 젊은 선비는 처음 본 고목을 보고 금쪽같은 글을, 그것도 율시로 서슴없이 썼으니 굉장한 글 솜씨입니다."

"뭘요. 누구나 다 쓸 수 있는 글입니다."

"아니요. 젊은 선비는 보기드문 문장가입니다."

주인인 훈장은 젊은 병연에게 깍듯이 존대말로 이어갔다.

"한성에서 오신다면, 달포 전에 치룬 과거시험은 보았는지요?"

병연은 훈장의 말에 조금 머뭇거리다가,

"웬걸요. 과거시험은 있었다고는 하지만 모두가 부정시험에 정작 실력이 있는 자들이 가서 겨룰 만한 자리가 못된다고들 합니다만....."

"맞는 말이요. 나도 젊었을 때 과거시험 보러 갔다가 죽다 살아온 거요. 그건 과거시험장이라기보다 싸움터나 다름없는 곳이었소. 처음 과거장에 입장할 때부터 사투를 겨뤄야 하고 들어가서도 자리다툼이 계속되고 이에 힘없는 사람은 뒤쪽으로 밀려 과거시험을 망치게 되는 것이지요. 그 후로는 과거시험에 담을 쌓고 말았지요."

"네. 그러셨군요."

예나 지금이나 과거시험에 대한 개선은 조금도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을 병연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과거시험을 보던 그날 이후 병연은 과거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리려고 무진 애를 써왔다.

갑자기 이곳 훈장께서 과거시험에 대해 얘기해오는 바람에 병연은 적당히 얼버무리려 했으나 그의 가슴 한편에선 과거에 대한 미련이 그의 마음을 옥죄어 왔다.

병연은 글씨 덕에 비단금침과 진수성찬의 푸짐한 대접을 받고 아침 일찍 그곳을 떠나 원주를 거쳐 안흥에서 마지막 밤을 자고, 횡성과 평창을 가르는 문재령에 다다랐다.

서울에서 떠난 지 나흘만이었다.

병연은 평창으로 내려가는 깊은 골짜기를 내려다보다가 바위벽 앞에 털썩 주저앉아 바위벽에 등을 기대어 파란 하늘을 쳐다보았다.

바로 그때였다.

검은 매(鷹)가 그의 머리 위에서 한 바퀴 회전하더니 쏜살같이 내리 꽂는다.

그가 앉은 거너편 비탈진 곳으로 뛰어가던 토끼를 낚아 채더니 공중으로 날아 사라져갔다.

순간적이었다.

그는 매의 위력에 놀란 채 매와 토끼가 사라진 허공을 바라보다가 등에 걸쳤던 단봇짐에서 종이와 붓을 꺼내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시제는 매(鷹)였다.

萬里天如咫尺間

俄從某峀又?山

平林搏兎何雄壯

也似關公出五關

천만리 길의 하늘을 지척같이 날아

저 산에서 번뜩하더니 이 산으로 날아오네.

숲 속에서 토끼를 낚아채는 웅장함이

마치 관우(關雨)가 오관에서 나오 듯 웅장하구나.

병연은 시 한 수를 써서 단봇짐에 넣으려는데 평창에서 오르는 길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잠시 후 커다란 나무상자를 멜빵 걸이로 지고 올라오더니 병연의 옆에 내려놓고는 숨을 몰아쉬며 옷소매로 흐르는 땀을 닦고는 허리춤에서 담뱃대를 뽑더니 쌈지에서 담배를 쑤셔넣고 부싯돌로 불을 붙이고 연방 빨아 젖힌다.

그러한 그를 바라본 병연은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렇게 무거운 짐을 지고 어디까지 가십니까?"

"한양에요."

"네?"

"나, 방물장사요. 한양에 가야 팔리니까 힘들어도 가야지요."

방물장사라면 여인에게 소용되는 물건이 아니던가.

갑자기 집에서 고생하고 계시는 어머님과 아내를 생각하고 즉석에서 빗살이 가늘고 촘촘하게 만든 참빗과 빗살이 굵고 성긴 얼레빗, 그리고 손바닥만 하고 손잡이가 달린 석경(石鏡:거울)을 사서 단봇짐에 쑤셔 넣고 평창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