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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8-03-22 10:01

休庵家의 맏사위 윤이지(尹履之)
 글쓴이 : 김관동
조회 : 1,589  
 

       休庵家(휴암가)의 맏사위 尹履之(윤이지)


 휴암공의 6남 2녀 중 맏사위 윤이지는 조선 중기 1589년 宣祖 22년에 출생하였다.

 자는 중소(仲素), 호는 추봉(秋峯), 본관은 해평(海平)이다.

 부자(父子) 영상(領相)으로 유명한 영의정 두수(斗壽)의 손자이며 영의정 방(昉)의 큰 아들이다.


 음보(蔭補)로 세자익위사 세마(世子翊衛司 洗馬)가 되고 1616년 (광해군 8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공조와 호조의 정랑(正郞)을 거처 사예(司藝)가 되었다.

 1618년 폐모론(廢母論)이 일어나자 장인인 휴암공과 함께 이를 반대하고 정계에서 은퇴(隱退)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여주 목사(驪州牧使)에 기용되고, 이듬해 충청도 관찰사(觀察使)로 특진(特進)되었다.

 이어 우부승지(右副承旨), 전라도 관찰사, 강원도 관찰사, 도승지(都承旨), 경기도 관찰사에 역임되었다. 그 후 병조, 예조, 호조의 참판(參判)등을 거쳐 1636년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강화유수(江華留守)로서 강화를 수비하다 패하였다.


 해창군(海昌君)에 습봉(襲封)된 뒤 1645년 평안도 관찰사, 이듬해 함경도 관찰사를 지냈다가 1648년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다음해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 1650년(효종1년) 형조 판서, 다시 한성부 판윤을 지낸 후 노인직(老人職)으로 숭정대부(崇政大夫)에 오르고 판돈령부사(判敦寧府事)에 이른 후 1668년(현종9년) 향년 89세에 졸하니 시호(諡號)는 정효(靖孝)이며 저서(著書)로 추봉집(秋峯集)이 전하고 있으며, 문헌(文獻)으로 인조. 효종실록과 문암집(文巖集),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