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운산 (雨收雲散)

 송나라 육유(陸游)가 성도(成都)의 늦봄에 명승 마하지(摩訶池)를 찾았다.

 따스한 볕에 꽃들이 활짝 피었다.

 풍악이 울리고, 귀족들의 행차로 경내가 떠들썩했다.

 육유는 '수룡음(水龍吟)'에서 이런 경물과 풍광을 묘사한 뒤

 "惆悵年華暗換(추창년화암환)  슬프다 좋은 시절 문득 바뀌면,

  黯銷魂(암소혼)  남몰래 넋은 녹아,

  雨收雲散(우수운산)  비 걷히고 구름은 흩어지겠지"

 라고 썼다.

 청춘의 꿈은 가뭇없고, 이 풍광도 곧 자취 없이 스러질 것이다.

이 시 이후로 '우수운산(雨收雲山)'은 분명히 존재하던 어떤 것이 자취도 없이 사라진 상황을 뜻하는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원나라 무명씨의 '벽도화(碧桃花)'에도 이런 시가 나온다.

 "雷聲響亮振山川(뢰성향량진산천)  우렛소리 크게 울려 산천을 진동하니,

  此際何人不怕天(차제하인부파천)  이때 누가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剛待雨收雲散後(강대우수운산후)  비가 개고 구름이 흩어지길 기다려선,

  凶徒惡黨又依然(흉도악당우의연)  흉도(凶徒)와 악당들은 또 앞서와 똑같으리."

 악당들이 천둥 번개가 꽝꽝 칠 때는 하늘이 두려워 쩔쩔매다가, 잠시 후 비가 걷히고 구름이 흩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말짱하게 온갖 못된 짓을 계속할 것이라는 뜻이다.

 조선 후기 원경하(元景夏)는 '영성월(詠星月)'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明星出天光炯炯(명성출천광형형)  하늘에 뜬 밝은 별 반짝반짝 빛나다가,

  陰雲忽蔽暗無星(음운홀폐암무성)  흐린 구름 문득 덮자 어두워 별도 없네.

  客堂三更雨冥冥(객당삼경우명명)  나그네 방 삼경에 빗기운 캄캄해서,

  林梢唯看數點螢(림초유간수점형)  숲 끝에 보이느니 반딧불이 몇 개뿐.

  雨收雲散星復出(우수운산성복출)  비 걷히고 구름 흩어지자 별이 다시 나와서는,

  螢光自滅山月明( 형광자멸산월명)  반디 불빛 스러지고 산 달만 환하더라."

 먹구름이 몰려와 하늘의 별을 지웠다.

 어두운 숲에는 반딧불이 몇 마리만 보인다.

 이윽고 비가 개고 구름이 흩어지자 가렸 던 달이 제 빛을 찾아, 천지는 광명한 본래 모습을 문득 되찾았다.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