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한(足寒)
세간의 권력에 취해 마음껏 호사를 부리던 초(楚)나라 왕 희범에게는 견제가 필요했다.
그 비위를 맞추기 위해 가뜩이나 허리를 졸라맸던 초나라 백성들에게 세금을 더 거둬들이자고 주장하는 신하도 있었다.
왕의 사치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고초를 겪어야 했던 백성들은 살던 집과 농지를 버리고 하나씩 둘씩 떠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땅이 있으면 곡식이 나온다”면서 왕은 황금으로 치장한 용(龍)과 무기를 만드는 호기를 부렸다.
탁발항이라는 신하가 나섰다.
그가 펼친 간언의 핵심은 이렇다.
“足寒傷心 발이 차가우면 마음이 상하고,
民怨傷國 백성이 원망하면 나라가 다친다”
는 것.
속담을 인용했지만 나라의 근간인 백성의 마음에 원기(怨氣)가 쌓이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는 내용이다.
『자치통감(資治通鑑)』에 나오는 대목이다.
동양의학이 사람의 건강을 따지면서 우선 관찰하는 것은
‘머리는 차갑되 발은 따뜻한 상태 (頭寒足熱)’
의 여부다.
머리는 뜨거운 기운이 많이 모이는 곳, 발은 반대로 가장 차가워지기 쉬운 부위다.
머리는 태양, 발은 지구로 비유할 수 있다.
따라서 차가운 물 기운은 머리 쪽으로 올라가고, 뜨거운 기운은 차가운 발 쪽으로 내려오는 수승화강(水昇火降)의 상태가 가장 좋다.
차가운 기운에 몸이 다치는 것을 피하기 위한 ‘상한(傷寒)’의 이론이 동양의학의 핵심이라고 보는 사람이 많다.
음기(陰氣)가 많이 모여 차가운 기운에 쉽게 다칠 수 있는 곳이 발이다.
가뜩이나 차가운 발을 더 차갑게 하는 것은 병증을 유발하는 첩경인 셈이다.
땅에 의지해 살아가기 위해서도 사람은 발로 딛고 일어서야 한다.
말하자면 발은 사람 삶의 가장 원초적이면서 뿌리를 이루는 부분이다.
이런 발이 차가워지면 백성의 마음은 상하기 십상이고 결국 나라의 운영도 그르친다는 것이 탁발항의 주장이다.
요즘 발이 시린 사람들 모습이 눈에 많이 띈다.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먹고사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힘겨워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가계의 빚이 688조원에 달한다는 통계도 엊그제 나왔다.
나라의 경제는 조만간 나아지기 힘든 상황이다.
형편이 좋지 못한 사람을 돌보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다.
민생에 찌든 사람이 더 늘어나 그 마음마저 차가워지면 우리 사회는 위험해진다.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마련과 세심하고 치밀한 집행이 우선이다.
발 시린 사람들에게 곁을 내어주는 마음가짐도 더 필요한 때다.
유광종 논설위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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