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Contact Us
    사랑방
    생활자료실
    한자 교실
    시 공부방
    역사정보교실
방문자
271
691
3,628
752,613
 
>> > 좋은 글방 > 한자 교실
 
작성일 : 17-12-28 06:07

세밑 천수관음상
 글쓴이 : 김관동
조회 : 198  
     세밑 천수관음상

 병 속의 버들가지 언제나 여름. 바위 앞의 푸른 대나무 온 세상이 봄 
 병상녹양삼제하 암전취죽십방춘(甁上綠楊三際夏 巖前翠竹十方春)’.

 강원도 양양군 낙산사 홍련암 기둥에 붙은 주련(柱聯)의 마지막 구절이다.
 지난 성탄절에 찾아간 홍련암은 시절을 잊은 듯했다.
 겨울 칼바람에도 암자 주변 대나무와 소나무는 푸르고 푸르렀다.
 암자 앞 바위를 때리는 억센 파도를 넉넉하게 받아 주었다.  
      
 
홍련암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기도처다.
 새해 일출을 보려고 해마다 수만 명이 몰린다.
 딱히 소망이 있어 암자를 찾아간 건 아니었다.
 겨울 바다를 둘러보자는 가벼운 기분에서였다.
 그럼에도 주련을 읽는 순간 정신이 퍼뜩 들었다.
 대통령 탄핵과 북핵 도발, 유난히도 스산했던 계유년(癸酉年)이 슬라이드처럼 돌아갔다.
 영국 시인 셸리의 ‘서풍부(西風賦)’ 한 대목을 읊조렸다.
 ‘겨울이 오면 봄이 멀 수 있으랴.’  
  
 홍련암 한복판에는 천수관음상(千手觀音像)이 있다.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으로 중생을 보살폈다는 자비의 보살상이다.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모든 이의 소원을 들어준다고 한다.
 성불까지는 아니더라도 2017년을 버텨 온 사람들의 꿈은 얼마나 이루어졌을까, 나는 얼마나 이웃을 생각하며 지냈을까를 돌아봤다.
 ‘가장 보잘것없는 이에게 너희가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는 성경 구절에 가슴이 찔렸다.
 
 겨울철 극장가에 지옥 바람이 후끈하다.
 영화 ‘신과 함께’가 개봉 1주 만에 관객 500만을 넘어섰다.
 살인·나태·거짓·불의·배신·폭력·천륜 7개 지옥에서 7번 재판을 통과한 망자만이 환생할 수 있다는 줄거리다.
 살인·폭력은 둘째 치고 나태·거짓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드물 것, 게다가 전쟁 공포에 휩싸였던 올해에 마침표를 찍는 영화치고는 시절 인연이 예사롭지 않다.
 
 조선시대 불화 ‘시왕도(十王圖)’가 있다.
 저승에서 재판을 관장하는 왕 10명과 지옥에서 발버둥치는 중생들이 등장한다.
 ‘신과 함께’의 원조로 부를 만하다.
 내년 무술년(戊戌年)에도 지옥은 계속될, 아니 더 드세질 것으로 보인다.
 진정 탈출구는 없는 걸까.
 누군가 홍련암에 『법구경』 구절을 걸어 놓았다.

 ‘건강이 최상의 이익, 만족이 최고의 자산
  무병최리 지족최부(無病最利 知足最富)’.

 천수관음상의 손길이 두두물물(頭頭物物)에 미치는 새해를 기다려 본다. 
 
     
박정호 논설위원  

중앙일보

 
 

Total 2,511
번호 제   목 글쓴이 날짜 조회
2106 세밑 천수관음상 김관동 12-28 199
2105 경경유성 (輕輕有聲) 김관동 12-28 219
2104 중·일 '화장실 외교' 김관동 12-27 263
2103 문화 사업 팔자 김관동 12-25 242
2102 석원이평(釋怨而平) 김관동 12-21 225
2101 닮은 듯 다른 베트남 김관동 12-21 215
2100 萬折必東(만절필동) 김관동 12-18 210
2099 與中野日 김관동 12-17 212
2098 삼년지애(三年之艾) 김관동 12-15 215
2097 금징어 김관동 12-04 231
2096 '新 事大'? 김관동 12-04 211
2095 또 다른 '수요 집회' 400회 김관동 12-01 212
2094 괘일루만 (掛一漏萬) 김관동 11-30 220
2093 漢文 工夫(678회) 김병린 11-29 221
2092 차이나 프리, 그리고 길들여지기 김관동 11-27 212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