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Contact Us
    사랑방
    생활자료실
    한자 교실
    시 공부방
    역사정보교실
방문자
689
696
3,628
752,340
 
>> > 좋은 글방 > 한자 교실
 
작성일 : 18-02-01 11:48

광화문 현판의 '색깔논쟁'
 글쓴이 : 김관동
조회 : 213  
        광화문 현판의 '색깔논쟁'

 

 “닫아서 이상한 말과 사특한 자들을 막고, 열어서 사방의 현인을 불러들인다.”

 조선의 개국공신인 정도전이 설파한 경복궁 정문(혹은 오문)의 의미다.

 1426년(세종 8년)에는


 ‘빛이 사방에 덮고 교화가 만방에 미친다

  광피사표 화급만방(光被四表 化及萬方)’

 는 뜻에서 ‘광화문(光化門)’의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이름은 거룩했지만 그 팔자는 기구했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탄 뒤 270년 이상 방치됐다.

 1865년(고종 2년) 시작된 경복궁 중건과 함께 과거의 모습을 되찾았지만 일제강점기에 마구 훼철된다. 

 총독부 건물에 제자리를 내주고 강제 이건됐고, 심지어는 식민지 실상을 왜곡 날조하는 조선박람회장의 선전문으로 전락했으며, 총독부 청사 뒤편에 잘 꾸며진 공원의 매표소 출입문이 되기도 했다.

 급기야 한국전쟁 때인 1951년 1월에는 문루가 완전 소실되는 운명을 맞는다.


안중식의 1915년 작품인 ‘백악춘효’(2점) 에서 보이는 광화문 현판. 바탕이 어두운 색임을 금방 알 수 있다. |강임산씨 제공

안중식의 1915년 작품인 ‘백악춘효’(2점) 에서 보이는 광화문 현판. 바탕이 어두운 색임을 금방 알 수 있다. |강임산씨 제공 


 

 이후 박정희 대통령 시절 복원되었다고 했지만 그 역사성은 상당부분 잃었다.

 본래의 자리에서 벗어난채, 그것도 경복궁 중심축에서 3.75도 틀어진채, 그나마 대통령의 지시 한마디에 ‘철근 콘트리트 공법’으로 복원된 탓에 줄곧 논란의 대상이 됐다.

 무엇보다 1968년 10월17일 광화문을 복원수리한 내력을 기록한 ‘광화문 중건중창 상량문’에는 매우 의미심장한 구절이 보인다. 

 “박정희 대통령의 영도 아래 구방유신(舊邦維新)의 대업이 진행되고 민족의 주체의식이 높아져가는 이 시운에….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바로 ‘구방유신’이다.

 무슨 뜻인가.


 ‘주나라는 오래됐지만 천명은 참으로 새롭다

  주수구방 기명유신(周雖舊邦 其命維新)’


 는 <시경>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대통령의 영도와 유신, 그리고 민족의 주체의식….

 모골이 송연해지는 구절이다.

 그로부터 꼭 4년 후인 1972년 공포한 10월 유신의 조짐이 바로 이 광화문 복원 상량문에서 엿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광화문 본체는 그나마 남아있는 각종 사진자료와 실측도면 등을 토대로 2010년 재복원했으니 천만다행이라 할까. 

 하지만 광화문 현판은 아직 해결하지 못했다.

 현판은 1865년(고종 2년) 훈련대장 임태영이 썼지만 한국 


심형구가 1940년 그림엽서 유통용으로 그린 ‘광화문’. 현판의 바탕색이 검은색임을 알 수 있다.|강임산씨 제공

심형구가 1940년 그림엽서 유통용으로 그린 ‘광화문’. 현판의 바탕색이 검은색임을 알 수 있다.|강임산씨 제공 


 전쟁 때 문루가 불타면서 소실됐다.

 1968년 복원당시 처음 계획은 한문체인 ‘光化門’이었다.

 그러나 복원 공사 과정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가로쓰기 한글체인 ‘광화문’으로 둔갑했다.

 아마도 박정희 대통령이 역점을 두고 추진한 한글전용화 정책 때문이 아니었을까.

 뭐 그런 분석이 있다.

 1968년은 한글전용화 5걔년 계획의 원년이었던 것이다.

 현판식에 참석한 서예가이자 정치인이 현판글씨를 보고는

 “아니 어떤 놈이 저걸 글씨라고 썼어!”라고 큰소리로 욕했다가 곁에서 ‘대통령’이라고 쿡쿡 찌르자

 “그래도 뼈대 하나는 살아있구먼!”하고 위기를 넘겼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떠돈다.

 당시 박대통령도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 이듬해 현판글씨를 다시 써서 걸었다고 한다. 

 결국 2010년 복원 때 임태영의 글씨를 복원한 ‘光化門’ 현판을 걸었지만 또다른 논란에 휩싸였다.

 현판이 균열되는가 하면 흰색바탕에 검은색 글씨로 복원한 것이 어쩐지 이상하다는 지적이 잇달았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도쿄대(1902년)과 국립중앙박물관(1916년) 소장 흑백사진을 보면 흰색바탕에 검은색 글씨가 맞다”고 고집을 피웠다. 

 그러던 문화재청이 이제는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 소장 광화문 사진(1893년) 등을 토대로 과학적 분석을 해보니 검은 바탕에 금색 글씨가 맞는 것 같아서 다시 고치겠다고 했다.

 사실 굳이 스미소미언 박물관까지 갈 것도 없었다. 

 궁중화사 출신의 안중식(1861~1919)의 1915년 작품인 ‘백악춘효(白岳春曉)’(2점)를 보면 광화문 현판의 바탕이 검은 색으로 보인다.

 또 1940년 서양화가 심형구(1908~1962)가 그림엽서에 그려 유통시킨 광화문 그림에도 어두운 바탕에 밝은 색의 글씨가 보인다. 

 그러니 부실복원이었다는 비판을 받을만 하다.

 뒤늦게나마 잘못을 인정했으니 다행이다.

 모쪼록 이번에야말로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말고 복원작업에 만전을 기해주기를 바란다.

 (이 기사는 강임산의 2015년 석사논문 ‘1968년 광화문 복원의 성격’ 을 주로 참고했습니다.) <참고자료>

 강임산, ‘1968년 광화문 복원의 성격’, 명지대 석사논문, 2015 

 송동현, ‘조선시대 궁궐건축의 현판구성과 상징성에 관한 연구’, 한양대 석사논문, 2005


 김동욱, ‘조선초기 경복궁의 공간구성과 6조대로’, <건축역사연구> 제17권 4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08



이기환 논설위원


경향신문


 
 

Total 2,511
번호 제   목 글쓴이 날짜 조회
2121 빅터 차의 뿌리 김관동 02-05 222
2120 광화문 현판의 '색깔논쟁' 김관동 02-01 214
2119 침정신정 (沈靜神定) 김관동 02-01 209
2118 前生業報 김관동 01-29 259
2117 쇼軍 김관동 01-27 240
2116 불무구전(不務求全) 김관동 01-25 217
2115 주자학 對 미륵불 김관동 01-22 207
2114 선사여사(先事慮事) 김관동 01-19 206
2113 쌍미양상(雙美兩傷) 김관동 01-18 209
2112 화경포뢰 (華鯨蒲牢) 김관동 01-11 194
2111 친구 사귀는 법 김관동 01-09 215
2110 자모인모 (自侮人侮) 김관동 01-04 219
2109 견마최난(犬馬最難) 김관동 01-01 209
2108 後天開闢의 역사철학 김관동 01-01 209
2107 황금개띠 김관동 12-29 212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