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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9-17 04:32

최치원의 遯世之地
 글쓴이 : 김관동
조회 : 247  

    최치원의 遯世之地

 

 세상과 불화(不和)하면 어떻게 되는가?

 죽든지 방랑하는 수밖에 없다.

 방랑도 쉬운 문제가 아니다.

 방랑의 한 유형을 보여준 인물이 신라 말기의 고운 최치원(857~?)이다.

 좌절한 지식인이 명산대천에 숨어버린 삶의 전형이다.

 지리산의 화개 골짜기도 최치원이 좋아하였던 곳이지만, 그가 말년에 세상과 인연을 끊고 완전히 숨어 버린 곳은 가야산의 홍류동(紅流洞) 계곡이라고 알려져 있다.

 전국을 떠돌다가 홍류동 계곡으로 들어온 최치원은


 '일입청산갱불환(一入靑山更不還)'이라는 시구를 남기고 자취를 감췄다.

 '이번에 청산으로 들어가면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으리라'


 는 다짐이 들어 있는 시구이다.

 홍류동 계곡 중간쯤에는 그가 세상을 피해 숨었던 장소가 전해져 온다.

 바로 농산정(籠山亭)이다.

 계곡물이 내려오다가 화강암 바위가 솟아 있는 지점을 'ㄱ' 자 비슷하게 꺾어 돌아가는 위치에다가 정자를 지어 놓았다.

 정자 앞에는 백색의 커다란 화강암들이 용의 이빨처럼 박혀 있다.

 그 이빨 사이를 흐르는 계곡 물소리에 옆 사람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계곡물의 소리는 묘한 효과가 있다.

 머릿속의 근심을 씻어 내려 버리는 효과이다.

 물소리가 인간의 번뇌를 씻어준다는 이치는 이 농산정에 와 보면 실감한다.

 머릿속의 뇌세포와 심장에 박혀 있는 좌절과 분노의 화기는 콸콸 쏟아지는 물소리만이 빼낼 수 있다.

 고운이 하필이면 왜 이 지점을 택해서 도를 닦았겠는가?

 그 비밀은 계곡 물소리라고 보는 것이다.

 자연의 소리만이 인간의 우울증을 달랜다.

 농산정 앞에는 '고운최선생둔세지(孤雲崔先生遯世地)'라고 새겨진 돌비석이 서 있다.

 고운이 남긴 둔세시(遯世詩)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다.


 '행여나 세상 시비 귀에 들릴까

  상공시비성도이(常恐是非聲到耳)

 

 흐르는 물 시켜 산을 감쌌네

 고교류수진롱산(故敎流水盡籠山)'.


 시비 소리가 귀에 안 들리는 시대는 없다.

 계곡 물소리로 이를 씻어 낼 수 있느냐 없느냐만 다를 뿐이다.

 홍류동 계곡에서 쏟아지는 농산정 물소리를 듣고 오니 보약 한 첩 먹고 온 것 같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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