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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1-02 09:27

지려작해 (持蠡酌海)
 글쓴이 : 김관동
조회 : 223  

    지려작해 (持蠡酌海)

 

 새해 벽두에 고려 나옹(懶翁) 스님의 '탄세(嘆世)'시 네 수를 읽어 본다.

 첫 수는 어둡다.


 "世事紛紛何日了(세사분분하일료)  세상 일 어지럽다 언제나 끝이 날꼬.

   塵勞境界倍增多(진로경계배증다)  번뇌의 경계만이 배나 더 많아지네.

  迷風刮地搖山嶽(미풍괄지요산악)  미혹(迷惑)의 바람 땅을 깎아 산악을 뒤흔들고,

   業海漫天起浪波(업해만천기랑파)  업장(業障)의 바다 하늘 가득 물결을 일으킨다.

  身後妄緣重結集(신후망연중결집)  죽은 뒤의 망령된 인연 다시금 모여들고,

  目前光景暗消磨(목전광경암소마)  눈앞의 광경은 어둡게 사라지네.

  區區役盡平生志(구구역진평생지)  구구하게 평생의 뜻 애를 써 보았지만,

  到地依先不奈何(도지의선부내하)  가는 곳마다 그대로라 어찌하지 못하네."


 미망과 업장을 못 떨쳐 세상은 늘 어지럽고, 번뇌는 깊어만 간다.

 아등바등 뭔가 이뤄보겠다고 애를 써보지만, 하던 대로 하고 가던 길로만 가려 드니 어찌해 볼 수가 없다.

 둘째 수는 이렇다.


 "眨眼光陰飛過去(잡안광음비과거)  세월은 순식간에 날아가 지나버려,

  白頭換却少年時(백두환각소년시)  젊은 때를 흰머리와 맞바꿔 버렸구나.

  積金候死愚何甚(적금후사우하심)  황금 쌓고 죽기 기다림 얼마나 어리석나.

  刻骨營生事可悲(각골영생사가비)  뼈 깎으며 삶 꾀하니 그 일이 슬프도다.

  捧土培山徒自迫(봉토배산도자박)  흙 퍼다가 산 쌓는 일 저만 그저 바쁘고,

  持蠡酌海諒非思(지려작해량비사)  표주박으로 바닷물 떠냄 그른 생각 분명하다.

  古今多少貪婪客(고금다소탐람객)  고금의 하고많은 탐욕 빠진 사람들,

   到此應無一點知( 도차응무일점지)  여기에 이르러선 한 점 앎이 없으리."


 잠깐 살다 가는 인생이 황금을 쌓아두고 그것만 흐뭇해서 다가오는 죽음을 못 본다.

 흙을 날라 산을 쌓겠다고 법석을 떨고, 표주박으로 바닷물을 퍼내겠다며 만용을 부렸다.

 고금의 역사가 그 탐욕의 끝을 분명하게 가리키고 있건만 그것이 잘 안 보인다.

 마지막 넷째 수다.


 "死死生生生復死(사사생생생복사)  죽고 죽고 나고 나고 났다가 다시 죽어,

  狂迷一槪不曾休(광미일개부증휴)  미친 미혹 한결같아 멈추지를 않누나.

  只知線下貪香餌(지지선하탐향이)  낚싯줄 밑 맛난 미끼 탐할 줄만 알았지,

  那識竿頭有曲釣(나식간두유곡조)  장대 끝에 낚싯바늘 있는 줄 어이 알리.

  喪盡百年重伎倆(상진백년중기량)  백년 인생 다 가도록 기량만 뽐내다가,

  搆成久遠劫愆尤(구성구원겁건우)  저세상 가고 나면 허물만 끝없으리.

  翻思業火長燃處(번사업화장연처)  업화(業火)가 꺼지잖고 타는 곳 생각하면,

  寧不敎人特地愁(녕부교인특지수)  특별히 근심하라 가르치지 않겠는가."


 깨닫고 나면 이미 늦다.

 새해에는 조금 더 비워내고, 하나 더 내려놓고 살자.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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