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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8-12 07:38

유희임천 (惟喜任天)
 글쓴이 : 김관동
조회 : 97  

 

   

    유희임천 (惟喜任天)

 

 

   

 

 

새벽 산책 길에서 신석정 시인의 ‘대바람 소리를 여러 날 외


웠다.

 

 

대바람 소리 들리더니/

 

소소(蕭蕭)한 대바람 소리/

 

창을 흔들더니/

 

소설(小雪) 지낸 하늘을/

 

눈 머금은 구름이 가고 오는지/

 

미닫이에 가끔/

 

그늘이 진다/

 

국화 향기 흔들리는/

 

좁은 서실(書室)을 무료히 거닐다/

 

앉았다/

 

누웠다/

 

잠들다 깨어보면/

 

그저 그런 날을/

 

눈에 들어오는/

 

병풍(屛風)의 낙지론(樂志論)을 읽어도 보고/

 

그렇다!/

 

아무리 쪼들리고/

 

웅숭그릴지언정/

 

-어찌 제왕(帝王)의 문()에 듦을 부러워하랴/

 

대바람 타고/

 

들려오는/

 

머언 거문고 소리.”

 

 

종일 무료하게 서실을 서성이다, 앉아 책보다 지쳐 누웠다, 잠들


다 깨어나도 바뀐 것 하나 없는 고인 시간을 시인은 ‘그저 그런


이라고 썼다.

 

그러다가 서재에 놓인 중장통(仲長統·179~220) ‘낙지론(樂志


)’을 쓴 병풍 글씨에 눈길이 가서, 글의 맨 끝 구절인 어찌 제


왕의 문에 듦을 부러워하랴!”란 구절에 눈이 딱 멎었더란 얘기다.

 

낙지론은 자연에 둘러싸인 선비의 거처와 생활을 그려 보인 뒤,


안빈낙도의 삶을 선망한 글이다.

 

글의 서두가 ‘사거유(使居有)’,  ‘만약 거처에 이 있어서로 시


작한 것을 보면, 글 속 좋은 밭과 너른 집(良田廣宅)의 여유로운


삶도 가난한 서생이 혼자 그려본 꿈인 줄을 알겠다.

 

안정복(安鼎福·1712~1791)은 이 글을 읽고 쓴 ‘낙지론 뒤에 제하


(題樂志論後)’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貧士生涯本隘窮(빈사생애본애궁)

 

가난한 선비 살림 본래 곤궁하거니,

 

卜居惟喜任天工(복거유희임천공)

 

삶을 다만 하늘에 내맡김을 기뻐하네.

 

林花不費栽培力(림화불비재배력)

 

숲속 꽃은 재배함에 힘을 쓰지 아니하고,

 

潭瀑元無築鑿功(담폭원무축착공)

 

못과 폭포 애초부터 만드느라 애씀 없다.

 

魚鳥自來爲伴侶(어조자래위반려)

 

물고기 새 절로 와서 동무가 되어주고,

 

溪山環擁護窓櫳(계산환옹호창롱)

 

시내와 산 빙 둘러서 들창문을 지켜주네.

 

箇中眞樂書千卷(개중진악서천권)

 

이 가운데 참 즐거움 1000권의 서책이라,

 

隨手抽看萬慮空(수수추간만려공)

 

손길 따라 뽑아 보면 온갖 근심 사라진다.”

 

 

청빈의 삶이라 해도 꿈마저 없다면 너무 슬플 것 같다.


안정복은 방 안 책 1000권을 손 가는 대로 뽑아서 읽다 보면 자잘


한 세상 근심이 간 곳 없어진다고 썼다.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1.08.12 03:00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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