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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10-18 0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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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만년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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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관동
 조회 : 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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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만년필
'학야 녹재기중의(學也 祿在其中矣)'.
'학문을 하면 녹봉이 자연히 따라온다'
는 뜻으로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30대 중반 이 대학 저 대학을 돌아다니며 기약 없는 보따리장수(시간강사)를 하러 다니던 시절에 수없이 되씨버본 문구이다.
나는 서푼짜리 보따리장수 하기 위해서 공부했단 말인가?
그러다가 깨친 사실이
'필야 녹재기중(筆也 祿在其中)'이다.
필(筆)을 받아야 밥이 나온다.
학(學)이 체(體)라고 한다면, 필(筆)은 용(用)이다.
체는 용을 갖춰야만 힘을 발휘하는 법이다.
필(筆)이야말로 인류 정신의 등불을 후대에게 이어주는 성스러운 신물(神物)이자, 밥이 나오는 생계의 수단이다.
어찌 보면 붉은색의 핏줄보다 필(筆)에서 나오는 먹줄이 더 생명이 길고, 그 영향력의 범위도 훨씬 넓다.
먹물이 피보다 진한 것이다.
필자의 만년필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이런 직업적인, 그리고 정신사적인 배경에서 시작되었다.
조선시대의 명품 붓 가운데 하나는 광주의 '진다리붓'이었다.
보통 붓보다 4~5배 비쌌다.
사슴의 등과 배를 연결하는 연결 부위에서 채취한 털로 만든 붓이다.
사슴은 배를 따뜻이 보호하기 위하여 비나 이슬을 맞으면 그 물이 등에서 아랫배로 흘러내리지 않고, 곧바로 땅바닥으로 떨어지게 하는 특수한 털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 털로 만든 붓이 명품 붓인 진다리붓이다.
사슴 한 마리당 한 자루가 나오고, 큰 사슴일 경우에는 두 자루 분량의 털이 나온다.
오래 써도 붓의 끝이 갈라지지 않고, 먹이 잘 흡수되며, 비석에 새기는 해서체(楷書體)의 글씨에 특히 잘 맞는다.
조선조에 글을 썼다면 모필(毛筆)인 진다리붓을 애용하였겠지만, 철필(鐵筆)의 시대로 바뀌면서 그동안 몽블랑 만년필을 써왔다.
해외여행 나갈 때마다 면세점에서 한 자루씩 구입해 놓고, 문장을 구상할 때마다 여러 개 만년필을 책상에 쭉 늘어놓는다.
느낌에 따라 이 필 저 필을 손으로 쥐어보면 생각이 잘 떠오른다.
만년필마다 촉감이 다르다.
어떤 촉감이냐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최근에는 이탈리아의 명품인 피나이더 만년필을 써 보고 있는데 손에 쥐는 촉감도 좋고, 전체적으로 기품이 흐르는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
조용헌 goat1356@hanmail.net
조선일보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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