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연은 검푸른 바다와 천하명산인 금강산을 보지 않고는 시를 쓸 수 없음이 가슴 답답했다.

이는 금강산을 보게 되면 바다도 함께 볼 수 있음이 아니던가.

그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만 보았다.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내는 말을 이어왔다.

“당신이 한양을 다녀 오시면서부터 항상 마음이 우울했어요.
  물론 집안에 사정이 있어서 결심한 바를 이루지 못하신 채 집에 오셨는데 편할리는 없겠지요.
  더구나 지난날 아주버님께서 돌아가시고, 이어 학균이를 양아들로 보내면서 마음이 더욱 울적해지셨어요.”
“그렇게 보였소?
  하지만…….”

병연이 말을 잇지 못하자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아내는 심중하게 물어보았다.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 것 같은데 말씀해보세요?”

아내의 말에 병연은 이때다 싶어 아내를 바라보며 심중히 입을 열었다.
“실은 금강산과 동해의 푸른 바다를 보고 싶구려.
  그러면 내 시상이 실물과 교화하여 마음껏 시를 쓰는 게 소원이었소.”
“…….”

아내인 장수 황 씨는 말이 없었다.

병연은 말을 이었다.

“옛날 중국의 문인들도 금강산을 그리워하며 이런 말을 했다오.
  원생고려국(願生高麗國)이면 일견금강산(一見金剛山)이라 말을 했소.
  금강산이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넓디넓은 중국 땅에서 우리나라의 금강산을 볼 수 없음을 한스러워 했겠소.
  하물며 이 땅에 태어나 금강산을 보지 않고서 천하의 산수를 시로 쓸 수가 없었소.”

병연은 마음이 후련했다.

금강산에 관한 이 말을 아내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장수 황 씨는 말을 마치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남편을 바라보다가 말문을 열었다.

“여보?
  당신이 그토록 원하신다면 금강산을 다녀오세요.
  그리고 지난 세월동안 맺혔던 모든 한을 산과 바다에 털어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오세요.”

아내의 말에 병연은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진정 다녀와도 되겠소?"
“네.
  당신은 지난 날 백일장에서 장원하시고 할아버님의 내력을 알고부터 절망에 빠지셨어요.
  그 후 한양에 다녀오신 후에도 당신은 지금까지 우울한 나날을 보내셨어요.
  그로 인해 당신은 집에 앉아 있는 날보다 주위에 있는 평창강이나 응암굴, 도마치골, 노성산성 아니면 삼방산과 절개산을 두루 돌며 스스로를 달래셨어요.”

병연은 아내의 말을 묵묵히 듣다가 결심이나 한 듯 입을 열었다.

“그렇게 보였소?
  어차피 마음에 두었던 일이니 수일 내로 금강산으로 떠나도록 하겠소.”

병연의 말에 아내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는 평창강변을 따라 내려가다가 절개산 서쪽 평창강물이 부딪쳐 에돌아가는 석벽에 응암굴(鷹岩窟)이라는 두 개의 동굴 밑에 서서 까마득히 석벽 중턱에 뚫려 있는 동굴을 쳐다보았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이곳 응암굴을 본거지로 삼고 왜적과 혈전을 벌였다.

5일간의 혈전 끝에 물밀듯이 몰려오는 왜군에게 점령당하고 왜병들이 권두문 군수의 부실인 강소사(康召史)의 몸에 손을 대자 부인은 장차 자신이 왜놈들에게 욕보일 것을 예견하고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이는 조선 여인의 굳은 정절을 왜놈들에게 보여 주었고,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왜장이 감복하고 부하들에게 정중히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의 예를 다하라 명한 애절한 역사의 사연이 담긴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