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래정(歸來亭)

                                                                  諱 光煜 귀래터

귀거래하사(歸去來何事) 어이하여 돌아왔는가

전원삼경황(田園三徑荒) 전원의 뜰이 거칠어졌거늘

춘환문송국(春環問松菊) 소나무와 국화에 북을 주고

객지인호상(客至引壺觴) 길손 오면 술잔 나누어야지

천맥연연동(泉脈涓涓動) 졸졸 샘물 솟아 흐르고

화지세세향(花枝細細香) 꽃가지 옅은 향기 풍기는데

위심료자락(委心聊自樂) 여기에 정을 붙여 나는 즐거워라

불필모헌상(不必慕軒裳) 벼슬은 구해 무엇하리

※ 강희맹(姜希孟 • 1424~1483) 귀래정 4首중 1首

※ 삼경(三徑) : 정원(庭園) 안의 세 갈래의 좁은 길. 뜻이 변하여 은자(隱者)의 문 안 뜰 또는 그 주거(住居). 한(漢)나라 때의 은자 장후(蔣詡)가 집 주위에 대나무 심고 대밭 사이로 세 갈래 오솔길을 내어 마음에 맞는 벗과 왕래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

※ 위심(委心) : 자기 본심대로 맡기는 것

※ 헌상(軒裳) : 대부(大夫)의 옷차림

귀래정은 죽소공이 광해, 인조 양조에 걸쳐 정치적으로 힘든 시기를 넘기고 행주 덕양산 아래에 남양주 석실 율리를 생각하며 터를 잡아 지으신 귀래터이다.(월보 김관동)

[겸재정선이 본]    귀래정(歸來亭)

귀래정은 조선 선조부터 효종조까지 살면서 형조판서를 지낸 죽소 휘 광욱((竹所 諱 光煜·1580∼1656) 선조가 행주 덕양산 기슭 행호강(현 창릉천)변에 세운 정자이다.공은 광해군 5년(1613) 폐모론이 제기되자 이를 반대하다 모친상을 기화로 병조정랑의 벼슬을 사임 하고 행주로 물러 나와 10년간 은거해 살았다.

인조 원년(1623)에 인조반정이 성공하자 다시 벼슬을 살면서도 늘 행주로 돌아와 지내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당호(堂號)는 옛날 물러나 살던 집을 고치고 그 정자에 귀래정이란 현판을 달았다. 동진(東晋)시대 대표적인 은거시인 도연명(陶淵明·365∼427)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따온 이름이다.겸재가 이 그림을 그릴 당시인 영조 14년(1742)에는 공의 증손자인 동포 휘 시민(東圃 諱 時敏·1681∼1747)이 주인이 되어 서울 집을 오가며 살고 있었다. 휘 시민은 겸재와 인왕산 밑 한 동네에서 사는 친구로 재당숙 농암 휘 창협(農巖 諱 昌協·1651∼1708)과 삼연 휘 창흡(三淵 휘 昌翕· 1653∼1722) 문하에서 함께 동문수학 한 사이였다.뿐만 아니라 휘 시민은 사천 이병연(쏏川 李秉淵·1671∼1751)과 함께 월사 이정구(月沙 李廷龜·1564∼1635)의 외현손이라 서로 8촌 형제에 해당하는 친인척 간이었다. 그러니 겸재와 사천은 어려서부터 휘 시민과 함께 이 귀래정을 무시로 출입했던 것이다.그리고 낙건정(樂健亭) 주인 김동필(金東弼·1678∼1737)은 사천의 이종사촌 아우이면서 휘 시민과도 8촌 형제간이었고, 장밀헌 송인명(藏密軒 宋寅明·1689∼1746)까지도 이정구의 외현손이었다. 당연히 송인명은 이병연, 김동필, 휘 시민과 서로 8촌 형제에 해당했다.겸재와 사천이 행주의 3대 별장인 귀래정과 장밀헌, 낙건정을 무시로드나 들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 있다. 그래서 겸재와 사천은 진경산수화와 진경시로 이를 기회 닿는 대로 사생해 냈으니 이 ‘귀래정’도 그런 겸재의 그림 중의 하나다.덕양산이 병풍처럼 둘러친 강변 산자락에 큰 규모의 기와집이 지어져 있다. 행랑채, 바깥사랑채, 안사랑채, 안채로 꾸며진 호사스런 대가 집 규모다.본채 오른쪽 뒤로는 별당이 하나 있고 왼쪽 쪽문 밖으로는 정자가 우뚝 솟아 있다. 이것이 귀래정으로 사료 된다. 그 앞에 소나무와 전나무가 한 쌍으로 서있고 집 뒤편은 온통 잡목 숲으로 뒤덮여 있다.덕양산은 솔숲으로 가득 찼으며 강변으로 이어지는 앞마당 가에는 버드나무가 줄지어 서서 숲을 이뤘다. 단촐한 기와집 한 채가 마을을 가려주는 오른쪽 앞산 기슭에 따로 지어져 있다. 이것이 휘 시민의 양자인 강재 휘 면행((强齋 諱 勉行·1702∼1772)과 강재공의 친형인 휘 현행(諱 顯行·1700∼1753) 형제가 기거했다는 연체당(聯棣堂)이 아닌지 모르겠다.솔숲에 둘러 쌓인 공의 집 아래 강가에는 이 집 전용인 듯한 거룻배 한 척이 매어져 있다. 으리으리한 이 대가 집에 어디서 무엇을 실어다놓고 나가는지 쌍돛단배 한 척이 돛폭에 골바람을 받으며 강으로 미끄러져 나가고 있다.작은 거룻배 한 척까지 달고 가는 것을 보면 그 규모가 어지간한 듯하다.

위 그림은 영조 18년(1742) 임술 경 비단에 채색한 33.3×24.7㎝ 크기로 겸재(謙齋) 정선(鄭敾 • 1676~1759)이 그린 것을 죽소공 휘 광욱의 13대손인 서예가 일중(一中) 휘 충현(忠顯)이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