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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암공은 고려 태사 선평(宣平)의 15대 손이시며 1561년(명종16년) 5월 11일 출생하셨고 휘는 상준(尙寯), 자는 여수(汝秀), 호는 휴암(休庵)이며 父는 군기시정(軍器寺正) 원효(元孝)이며, 母는 전주 李씨 이다.

1582년(선조 15년)에 진사가 되시고 1590년 증광문과 을과로 급제하시어 주서(注書) 대교(待敎) 병조좌랑(兵曹佐郞)을 거쳐 1595년 강원도 어사로 파견되셨다가 무고를 받아 체직 되셨다1597년부터 영광군수, 호남조도사, 내섬시정(內贍時), 공주목사를 거쳐 1604년 해주목사(海州牧使), 죽주목사(竹州牧使)를 지내시고 광해군 즉위년인 1608년 동부승지(同副承旨) 거쳐 좌부승지때 천추사(千秋使)로 명나를 다녀 오신후 우승지, 좌승지, 도승지(都承旨)를 역임 하셨다.다음해에 가의대부에 올라 형조참판이 되어 동지춘추관, 의금부사(義禁府使)를 겸했다가 1613년 계축옥사(癸丑獄事)때 무고로 체포되신뒤 인목대비의 아버지인 김제남과 함께 옥고를 치르셨다.1618년 폐모론(廢母論) 논의시 사촌 동생(第)인 상헌(尙憲) 및 아들 광욱(光煜)과 정청에 참여치 않고 高陽등에 은거하며 끝까지 참여하지 안으시다가 광해군의 미움을 받고 삭직을 당하시고 1923년 인조반정 후 지난일이 문제되어 길주.아산 등지에 유배되었다가 12년만에 풀려 나셨고 1635년 8월29일 향년 75세로 돌아가셨다.통감강목(通鑑綱目)을 즐겨 읽으셨고 손수강목 20권의 목(目)을 초(抄) 하시어 강감요약(綱鑑要略)을 편하셨는데 보는 이들이 그 정요(精要)함에 탄복하지 않는이가 없으셨다고 한다. 특히 글씨에도 능하시어 항상 주위에 사람이 끊이지 않으셨고 그 문장 또한 명문으로 문집(文集) 천(天).지(池).인(人) 삼책으로 전한다.

후손으로 6남 2녀를 두셨으며 1남 광욱(光煜)은 의정부 좌참찬(左參贊)으로 시호가 문정(文貞)이시고, 2남 광위()는 의정부 증참찬(贈參贊)으로 진위(振威) 현령이시고, 3남 광소(光炤)는 증호조참판(贈戶曹參判)이시며, 4남 광혼(光混)은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使)이시고, 5남 광련(光煉)은 증공조참의(贈工曺參議)이시며, 6남 광희(光熺)는 증병조참판(贈兵曺參判)이시다.

 

(甲子重刊譜: 1984년 참조)

 
 
 
 
충남 예산군 신양면 무봉리 영역에 계신 휴암공 후배(김해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