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유고(黃山遺稿) 김유근의 문집

의로운 기러기 -서문과 함께

사냥꾼이 들판에 나가 기러기 한 마리를 생포하였는데 나머지 한 마리는 달아났다. 집으로 돌아와 새장 안에 매에 놓고 마당에 두었다. 이날 밤 달을 밝고 바람은 맑아 은하수가 환하게 펼쳐져 있는데 문득 너무나 구슬픈 기러기 울음소리가 먼 곳에서 들려왔다. 새장에 있던 기러기가 우러러 보고 호응해서 우니 날던 기러기가 드디어 새장 밖에 내려앉았다. 두 마리가 만나 서로 울고 웃으며 다정히 목을 부비면서 기쁨에 넘쳐 마치 고통을 위로하고, 새장을 사이에 두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 듯하였다. 잠시 뒤에 날개를 펼쳐 날아올라 함께 가려 하였는데 날아오르자마자 떨어져 새장에 부딪쳐 멈추었다. 몇 번이나 이렇게 했지만 끝내 벗어날 수가 없었다. 밖에 있던 기러기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더욱 다급해지자 새장을 들이받고 죽자 새장안에 있던 기러기도 그 곁에서 죽었다. 이 일에 감명 받아 시를 짓는다.

義雁
사냥꾼이 들판 따라 거니는데
이 밤 어찌 밝은 별들 반짝이는지
어진이는 자고 있는 새를 사냥한지 않는다 하니
차마 다시 하늘에 그물 칠 수 있겠는가
아침 해 맞으며 노래하면서 날던 기러기 두 마리
안개 낀 강에 내려와 노릴며 잠시 머물다가
갑자기 인기척 느끼고 날아오르려 하여
날개 펄럭이며 땅을 박차고 창공으로 날아갔는데
기러기 한 마리 날자마자 도로 떨어져
잘못 잡히니 어찌 긴 두 날개 쓸수 있겠는가
탐욕스런 사냥꾼 두 마리 다 못 잡아 원망하며
집으로 돌아와 새장에 넣어 마당에 두네
모이를 주지만 기러기 돌아보지도 않고
날개를 접은채 처량히 걷네
이 날 달을 밝고 밤은 고요한데
싸늘한 이슬 내리고 서풍(西風)은 차갑네
어디선가 외로운 그림자 홀연 급히 날아가는데
울음소리 서글퍼 차마 듣기 어렵구나
가만히 웅크려 기다린 지 오래
머리 들어 길게 우니 꿈이 깬 듯하네
한 놈은 구름 가 한 놈은 새장 안 번개같이 호응하여
펄럭이는 낙엽처럼 뜰에 내려앉네
머리 부비며 울어 하소연하는 듯
서로 위로함이 어찌 그리 간절한지
삽시간에 날개 치며 새장 안으로 돌진하고
땅을 박차고 함께 먼 바다로 가려 하네
새장의 장벽 아주 잊어버린듯 몸을 날리지만
못에 박힌 듯 몇 번이나 날아오르다 떨어지네
안팎의 기러기 슬피 울며 다시 서로 다가가
쌍으로 땅에 머리 찧으며 기꺼이 죽음을 맞네
하늘이 부여한 형체는 만물 모두 다르지만
생명체 어느 것이든 본성을 갖추고 있으니
부자 사이 사랑은 범과 이리도 그 본성 지니고
할미새도 형제의 어려움 구원해주지
물수리는 부부금실 좋으면서 분별도 있다 하니
옛 시인의 노래 참으로 훌륭하네
새들조차 예의를 잘 아니
사람 되어 떳떳한 법도 못 지키는 게 부끄러운 일이지
내 지금 여러 번 되뇌이고 탄식하며
붓 들어 의로운 기러기 기록하니
세상에 서로 반목하는 많은 부부들에게
모범으로 이 일을 전해줄만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