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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7-28 09:04

[57편]병연의 비육지탄(髀肉之嘆), 집으로 돌아오자 더욱 깊어져...|
 글쓴이 : 김관동
조회 : 414  


남북으로 높은 산이 우뚝 서있어 골은 깊었다.

병연은 이 험준한 골짜기를 덤덤히 걸었다.

그 덤덤함이란 초조와 분노가 그의 두뇌를 엄습해 왔다.

마치 비육지탄(?肉之嘆)에서 오는 서러움이랄까.

세상에 태어나 공명을 떨치지 못함보다 더 엄습해 오는 자신의 재주나 수완, 역량을 발휘할 틈이 없음을 탄식했다.

살고 있는 집의 영역이 가까워 오면서 그러한 생각이 더욱 더 그의 뇌리를 짓눌렀다.

그러나 병연은 할아버지에 대해 조금도 원망하지 않았다.

삶을 위해선가, 어지러운 세상을 바라보시며 어쩌면 두 마음이 함께 움직였을 것으로 짐작했다.

이토록 막되어가는 세상살이, 할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방림을 지나 한참동안 평창강을 따라 걸으니 좌측으로 샘 골 마을이 보였다.

활처럼 휘어지며 샘 골 마을을 감싸고 흐르는 평창강을 에돌아가니 마을 중간쯤 여울목에 가로질러 놓은 섶 다리를 건너 지(智) 씨들이 모여 사는 마을 가운데 한국 전통가옥인 커다란 기와집이 대여섯 채가있고 모두 초가집으로 지은 아담한 마을이었다.

그 중 제일 큰 기와집에 이르니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이년 전 이곳으로 이사 와서 한 달 남짓 지낸 터라 모두가 새롭지 않았다.

병연은 열려있는 대문을 들어서니 안채 사랑방 문이 열려 있어 먼발치에서도 주인인 지 씨 할아버지가 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병연은 서슴없이 다가가 허리를 굽히고,
“행랑채에 살던 제가 돌아왔습니다.”
“아아, 한양 갔던 자네가 돌아왔구먼.”
“네.”
병연은 등에 짊어진 단봇짐을 신발 옆에 내려놓고 사랑방으로 들어가 큰절을 올렸다.
“그래, 한양 갔던 일은 잘되었나?”
“네, 지금껏 저의 또래들과 글공부를 하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기왕이면 과거라도 보지 않고…….”

지 씨 노인은 병연의 처지를 잘 아는 터라 공연한 질문을 했구나 싶어 말끝을 흐리며,
“어서 집으로 건너가 보게.”

병연은 지 씨 노인의 말에 일어나 절을 하고 나와서 행랑채로 걸어갔다.

행랑채 끝 방으로 다가가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학균아?”
“누구세요?”

잠시 후 아내인 장수 황 씨의 목소리가 방안에서 새어나왔다.

곧이어 문이 열렸다.
“나요.”
“어머! 당신 오셨어요.”
병연은 방안으로 들어가 방안을 둘러보았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어머니가 계시지 않았다.
“어머님은 어디 가셨소?”
“어머님은 당신이 한양으로 올라가시던 해 늦가을에 결성현(지금의 충남 홍성군 광천읍) 외가댁으로 가셨어요.”
“외가댁으로?”
“네. 이곳에서 떠나실 때 몸이 불편하셔서 자주 기침을 하셨어요.”
아내인 장수 황 씨의 말에 병연은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쳤다.

그는 곧이어 엄마 뒤에서 치맛자락을 잡고 숨어보던 학균이를 바라보며,

“학균이 많이 컸구나.”

“학균아? 한양 가셨던 아버지시다.”
어머니의 말에 학균이는 못미더워서인지 힐끔 힐끔 쳐다만 본다.

병연은 그러한 학균이를 안아다 무릎 위에 앉혔다.
“여보? 하릴없이 허송세월만 보내고 와서 면목이 없구먼.”
“아니에요. 당신이 한양으로 올라가시고 어머님은 항상 걱정 하셨어요. 능력은 있으나 벼슬길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 하셨어요.”
아내의 말에 병연은 다소 위로 감을 느꼈다.
하지만 벼슬길은 이미 오래 전부터 사라진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