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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12-14 22:08

[60편]한양에서 내려온지 1년, 병연은 시상이 떠오르지 않는데..
 글쓴이 : 김관동
조회 : 451  


학균이와 헤어진 지 며칠이 지났다.

장수 황씨는 학균이를 떠나보낸 슬픔을 안고 여기저기서 맡긴 두루마기, 도포, 바지, 저고리를 짓느라 바느질에 열중하고 있었다. 황 씨는 바느질 솜씨가 좋아 샘 골은 물론 이웃 동리까지 소문이 퍼져 바느질감이 적잖이 들어왔다.

샘 골인 천동리는 부촌인데다 지 씨들이 모여 사는 선비 촌이었다.

이는 임진왜란 때 평창읍내에 있는 노산성(魯山城)에서 이곳 군수인 권두문(權斗文)과 민병대를 모아 장렬하게 싸우다 전사한 지사함(智士涵) 장군의 업적을 임금에게 아뢰어 증직을 하사받았다.

그의 묘비에는 ‘종일품숭록대부병조판서봉산지공휘사함지묘(從一品崇祿大夫兵曹判書鳳山智公諱士涵之墓)라 씌어있고 사당도 있다.
주인댁은 대대로 내려오면서 조상의 은덕을 기려 인심도 좋았고 마음씨도 좋았다.

이쯤 되고 보면 병연이도 마음이 놓였다.

이는 주인댁을 믿고 자신은 가보고 싶었던 금강산 구경도 마음대로 다닐 수 있고, 가슴에 맺혔던 한의 답답함도 풀 수 있지 않은가.
병연은 한양에서 떠나올 때 가져온 단봇짐을 풀어 화선지를 꺼내어 자신이 쓴 글을 뒤적이다가 함께 들어 있는 주머니를 풀어 보았다.

주머니 속엔 삼십 냥이 들어 있었다.

이는 함께 글공부하던 벗들이 떠나올 때 넣어준 오십 냥 중 집에 도착하여 형님 장사 지낼 때와 학균이를 양아들로 보낼 때 노자 돈으로 주고 남은 금액이었다.

돈이란 묘한 존재였다.

이것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지 않은가.

금강산 구경도, 팔도강산을 돌아다녀도 돈이면 될 수 있는 일이라 생각 되었다.
그는 손에 쥐었던 삼십 냥을 주머니 속에 넣고, 화선지를 꺼내어 바닥에 펴 놓고 먹을 갈았다.

이어 붓을 들고 먹물을 듬뿍 찍고는 종이 위에 ‘전(錢:돈)’을 써놓고 시 한수를 휘갈기기 시작했다.

周遊天下皆歡迎 천하를 다 돌아 다녀도 모두 너를 반기고

興國興家勢不輕 나라와 집안 살림 흥하게 하니 네 공이 크구나.

去復還來來復去 갔다가 되돌아오고 왔다가 다시 가며

生能死兮死能生 살 놈도 능히 죽이고 죽일 놈도 능히 살리네.

苟求壯士終無力 아무리 장사라도 돈 없으면 무력해지고

善用愚夫必有名 멍청이라도 돈 있으면 유명한 인사되네.

富恐失之貧願得 부자는 잃을까 걱정 빈자는 얻으려고 애쓰니

幾人白髮此中成
수많은 사람들이 이것으로 늙는구나.

그는 쉼 없이 휘두르던 붓을 멈추고 조용히 벼루 위에 내려놓고 한숨을 내쉬고는 벌떡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았다.

능선으로 몇 개의 차일을 친 듯 절개산(節介山)이 우뚝 섰고 그 옆으로 깎아지른 석벽으로 에돌아가는 강물 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병연은 그러한 정경을 둘러보고 긴 한숨을 내쉬고는 미닫이가 열려 있는 윗방으로 고개를 돌렸다.

언제나처럼 바느질을 하고 있는 아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여보? 시상(詩想)이 떠오르지 않는구려.”
남편의 심각한 물음에 장수 황 씨는 바느질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당신 지금도 시를 쓰시지 않으셨어요?”
“하지만…….”
병연은 말을 잇지 않았다.

실은 한양에서 내려와서 일 년이 되도록 몇 십 편의 시를 썼으나 주로 동물과 정물에 관한 시를 많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