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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1-26 13:04

[63편]죽시(竹詩)-1부 최종편
 글쓴이 : 김관동
조회 : 413  



병연의 두뇌엔 상상할 수 없는 글이 요동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집을 나서도 비렁뱅이 짓을 안 해도 인간답게 살 수가 있다고 생각했다.

병연은 앞으로 떳떳하게 이름을 쓸 수 없어 호를 난고(蘭皐)라 지었는데, 이재 그에겐 난고 시인으로 불러도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난고 시인은 노성에서 집으로 돌아와 내일 먼 길을 떠날 채비를 했다.

채비라야 아내가 내어준 흰옷 두어 벌, 시인과 떨어질 수 없는 종이, 붓, 먹, 벼루를 챙기고 나서 윗목으로 밀어놓고 옆에서 자고 있는 익균이를 들여다보았다.

천진난만하게 자고 있는 아들을 들여다보는 시인의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만일 익균에게도 폐족이라는 멍에가 씌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시인은 누워 있다가 갑자기 시상이 떠올라 자리에서 일어나 단봇짐에 넣어 둔 종이와 붓을 꺼내들고 시 한 수를 쓰기 시작했다.
시제는 죽(竹, 대나무)시였다.

此竹彼竹化去竹  이대로 저대로 되어 가는 대로

風打之竹浪打竹  바람이 부는 대로 물결이 치는 대로

飯飯粥粥生此竹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사는 이 대로

是是非非付彼竹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른 대로 붙이세.

賓客接待家勢竹  손님 접대 하는 것은 가세 형편대로

市井賣買歲月竹  시장에서 팔고사고 하는 것은 시세대로

萬事不如吾心竹  만사가 내 마음 대로 되지 않으니

然然然世過然竹 
그렇고 그러하고 그런 세상 그런대로 지내리라.

시인은 단숨에 글을 써놓고 무거운 미소를 짓고는 붓을 내려놓았다.

정말 재미있고 제치 있는 해학(諧謔)시이다.

이 글을 뜻대로 해석하면 안 된다. 즉 竹(대 죽)자를 우리말의 ‘대나무’의 뜻을 이용하여 ‘대’자로 해석하면 재미있는 시가 된다.

어쩌면 시인은 시에 담긴 뜻이 앞으로 방랑의 길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을 솔직하게 표현한 그의 마음인지도 모른다.

이 글의 뜻은 시인의 마음속에 새겨두는 좌우명(座右銘)이 될 수도 있는 글이 아닌가.
다음날 아침 평일 때와 같이 조반을 마치고 행장인 단봇짐을 지고 마을 앞 강을 가로질러 놓은 섶 다리를 향해 걸었다.

병연은 섶 다리에 다다르자 뒤따라오는 아내를 돌아보며 등에 업힌 익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을 했다.
“여보, 익균에게는 이 애비가 쓰고 있는 폐족이라는 말이 귀에 들어가지 않아야 할 테니 매사 조심해주기 바라오. 내가 있는 한 폐족이란 말은 지워지지 않을 테고…….”
“그럼 당신은 영원히 떠나시는 거예요?”
“아니오. 세월이 흐르면 그 말은 잊혀질 거라고 생각되오,”
병연은 익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나 떠나겠소. 부디 익균이 만은 건강히 키워주오.”
“여보……? 어디를 가든 몸성히 다녀오세요.”

병연은 대답대신 눈물을 흘리고 있는 아내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금강산을 향해 발길을 재촉했다.

지난 2007년 6월 함께그린양주 56호부터 게재를 시작한 다큐멘터리 김삿갓은 이번 호로 1부의 끝을 맺습니다. 지난 5년간 다큐멘터리 김삿갓을 집필하시며 양주의 인물인 김삿갓에 대해 많은 정보를 제공해주신 이은모 님께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또한 이은모 님이 그동안 수집한 문헌정보와 작품 등을 바탕으로 3월 경 ‘난고 시선’과 ‘김삿갓 일대기’를 단행본으로 출간할 예정이니 시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