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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2-26 14:26

18세조 택재공 창립(澤齋公 昌立)
 글쓴이 : 김관동
조회 : 465  
       18세조 택재공 창립
                        (澤齋公 昌立)
공의 자는 탁이(卓爾), 호는 택재(澤齋), 현종 7(1666) 병오 822일 출생하였다.
현조는 신천공[(信川公) 신천군수 증좌찬성 생해(生海)]이고, 고조는 삼가공[(三嘉公) 음삼가현감 증영의정 대효(大孝)]이며, 증조는 문정공[(文正公) 양관대제학 청백리 좌의정 증영의정 청음(淸陰) 상헌(尙憲)]이니, 할아버지는 동지공[(同知公) 동지중추부사 증영의정 광찬(光燦)]이요, 아버지는 문곡공[(文谷) 대제학 영의정 수항(壽恒)]과 어머니 정경부인 안정나씨의 61녀 중 6남으로 영의정 몽와 창집(昌集)과 이조판서 대제학 농암(農巖) 창협(昌協), 선서연관 삼연(三淵) 창흡(昌翕), 동몽선관 노가재(老歌齋) 창업(昌業), 예빈시주부 증이조판서 창즙(昌楫)의 동생이다.
공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준수하며 명랑하여 예리한 면이 생동하였다. 10세에 선친을 따라 남쪽으로 갔을 때 이미 당나귀를 조종하여 타고서 천리를 달리곤 하였는데, 장성하자 다시 기를 접고 느슨해졌다.
그러나 공의 의기(意氣)는 고상하고 굳세어 항상 개연(慨然)히 세속을 바로잡으려는 뜻이 있었다.
어려서 여러 형들을 따라 공부하면서 이미 풍아(風雅, 시경(詩經)의 국풍(國風)과 대아(大雅), 소아(小雅))의 원류(源流)를 들어보고 고금 성률(聲律)의 높낮음에 대해 취사선택(取捨選擇)할 줄을 알았는데, 이해력이 풍부하여 스스로 터득한 바가 많았다.
이에 평소 좋아하는 잡기(雜技)를 모두 버리고 오로지 문장에다 힘을 쏟았는데, 이미 형 창흡(昌翕) 자익(子益, 창흡의 자())을 스승으로 삼아 마을의 동지 5, 6명을 인솔하여 주야로 어울려 서로 갈고 닦는 것을 일삼았다.
시경(詩經), 초사(楚辭), 문선(文選)과 옛날 악부(樂府)로부터 당()나라 중기 제가(諸家)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모두 연구하고 심취하여 시가(詩歌)로 발로되었다.
특히 태사공(太史公, 사마천(司馬遷))사기(史記)를 좋아하여 매양 읽다가 경경(慶卿)과 고점리(高漸離)가 축()을 타며 슬프게 노래하는 대목에 이르면 대뜸 탄식하고 강개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동료들을 돌아보고 말하기를, “나는 너희들과 같이 날마다 술을 마시고 이소(離騷, 옛 초()나라 굴원(屈原)의 서정시(敍情詩))나 읊조리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는데, 그러면 족하겠다.”고 하였으니, 대체로 그의 뜻은 세상의 부귀공명을 하찮게 여기었던 것이다.
간혹 태학(太學)에 나가 노닐면서 누차 과시(課試)에 합격하였으나 또한 탐탁지 않게 여기었다.
그러나 공은 선량하고 사람을 널리 사랑하였다.
집에서는 효도하고 사람과는 신의가 있었으며 특히 친구간에 독실하였다. 이로 인해 그와 노니는 자들은 너나없이 성심으로 사모하였고, 그가 죽었을 때 동기간을 잃은 것처럼 통곡하였는가 하면 심지어 상복(喪服)을 입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벼슬에 뜻을 안두고 전국을 주유하였다.
숙종 9(1683) 계해 1226일 애수(哀壽) 18세에 졸하였다.
배위는 완산이씨로 현종 7(1666) 병오에 태어나 영조 22(1746) 병인 620일 향년 81세에 졸하였다. 아버지는 대제학 이조판서 문간공(文簡公) 민서(敏叙)이고, 할아버지는 도정(都正) 후여(厚輿)이며, 증조는 참의 완록(緩祿)이니, 외조는 좌의정 원두표(元斗杓)로 본관은 원주이다.
슬하에 무후하여 셋째형의 삼남 장서원 사평(사평(司評) 증이조참판 후겸(厚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