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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3-12 08:34

20세조 문경공 미호 원행 (文敬公 渼湖 元行)
 글쓴이 : 김관동
조회 : 772  


       문경공 미호 원행

               (文敬公 渼湖 元行)

 

공(公)의 자는 백춘(伯春), 호는 미호(渼湖), 운루(雲樓), 시호는 문경(文敬). 숙종 28년(1702) 임오 12월 19일에 출생하였다.

중시조이자 현조는 파조인 문정공[(文正公) 양관대제학 좌의정 청백리 증영의정 청음(淸陰) 상헌(尙憲)]이고, 고조는 동지공[(同知公) 동지중추부사 증영의정 광찬(光燦)]이며, 증조는 문곡공[文谷公 대제학 영의정 수항(壽恒)]이니, 할아버지는 충헌공[(忠獻公) 영의정 몽와(夢窩) 창집(昌集)이요, 아버지는 충민공[(忠愍公) 우부승지 증찬성 죽취(竹翠) 제겸(濟謙)]과 어머니 증정경부인 은진송씨의 6남 2녀 중 3남으로 충정공(忠正公) 성행(省行)과 내시교관 준행(峻行)의 동생이고, 증좌찬성 달행(達行)과 남원부사 탄행(坦行)의 형이다.

종숙 제겸(濟謙)이 무후하여 출계 입양하니 할아버지는 농암공[(農巖公) 대제학 예조판서 시 문간(文簡) 창협(昌協)]이고, 아버지는 관복암공(觀復菴公) 숭겸(崇謙)]과 어머니 밀양박씨가 무후하여 계자로 후사를 이었다.

19세에 조졸한 종숙 숭겸의 후사를 이은 후 종조(從祖)인 삼연(三淵)창(昌翕)에게 글을 배우다가, 이재(李縡)의 무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숙종(肅宗) 45년 (1719) 기해 약관 18세에 증광시 진사 3등 65위로 합격하였다.
 
경종 2년(1722) 신임사화 때 본가의 할아버지 창집(昌集)이 노론 4대신으로 사사되고, 생부 제겸(濟謙을 비롯하여 친형제인 성행(省行) · 탄행(坦行) 등이 죽거나 유배당하자, 벼슬할 뜻을 버리고 학문에 전념하였고, 어머니 배소에 따라가 《맹자》 ·《율곡집 栗谷集》 ·《우암집 尤庵集》 등을 탐독하였으며, 영조1년(1725) 본가의 할아버지 · 아버지 · 형 등이 신원된 후에도 계속 시골에 묻혀 살며 학문연구에만 몰두하였다.

영조 16년(1740) 학행으로 천거 받아 내시교관이 되었고, 영조 26년(1750) 세자익위사위솔(衛率)이 되었으며, 이어 종부시주부(宗簿寺主簿)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부임하지 않았고, 영조 32년(1756) 4월 23일 장령(掌令), 영조 35년(1759) 왕세손을 교육할 적임자로서 영조의 부름을 받았으나 상소하여 사퇴하였다.

영조 37년(1761)년 공조참의 · 사성(司成), 뒤에 찬선(贊善)에 임명하였을 때도 역시 사양하였고, 조선 후기의 집권계층에 속한 노론의 혁혁한 가계의 후예이고, 학통을 잇는 존재가 되어 조야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학자의 지위에 올랐다.

당시의 사회는 정치적으로 산림을 중시하였는데, 공은 유수한 산림의 한 사람으로 나라 안에서 명망을 한 몸에 받았고, 당시의 행세학(行勢學)은 송시열(宋時烈)을 종장(宗匠)으로 받드는 성리학이 주조를 이루고 있었으나, 그 학파 자체 내에서도 ‘낙론(洛論)’과 ‘호론(湖論)’의 대립이 있었는데, 그 발단은 할아버지 창협(昌協)과 권상하(權尙夏)의 학설에서 시작된 것이다.

조부 농암 창협의 이론을 이어 권상하의 제자인 이간(李柬)이 이재와 함께 낙론의 중심이 되고, 권상하의 이론을 이어 그의 제자 한원진(韓元震)이 호론의 중심이 되었는데, 조부 창협의 손자이자 이재의 문인인 공은 낙론을 지지하는 대표적인 학자였다.

공의 사상은 대체로 조부 창협의 학설을 답습하여 주리(主理)와 주기(主氣)의 절충적인 입장에 서 있었고, 학설을 종합해보면, 심(心)을 이(理)라고도 하지 않고 기(氣)라고도 하지 않으며, 이와 기의 중간에 처하여 이기(理氣)를 겸하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 여겼는데, 이것은 바로 이황(李滉)의 주리설과 이이(李珥)의 주기설을 절충한 창협 학설의 계승이었다.

나라에서 정통적 학자로 추대받아 산림의 지위에 있었던 공의 문하에서 수많은 순수 성리학자들이 배출되었고, 한편 몇 사람의 실학자도 배출되었으며, 공의 학통을 이은 제자로는 박윤원(朴胤源) ·오윤상(吳允常) ·홍대용(洪大容) · 황윤석(黃胤錫)과 공의 아들 이안(履安) 등이 있다.

영조 48년(1772) 임진 7월 7일에 졸하니 향년 71세였다. 추증으로 이조판서에 시호는 문경이 내려졌다.

배위는 증정부인 남양홍씨로 숙종 28년(1702) 임오에 태어나, 영조 43년(1767) 정해 정월 19일 66세에 졸하였다. 아버지는 진사 증이조참판 구조(龜祚)이고, 할아버지는 참판 숙(橚)이며, 증조는 증이조참판 성원(聖元)이니, 외조는 생원 이형(李泂)으로 본은 완산이다.

슬하에 2남 2녀를 두니, 1남은 공조참의 겸 제주찬선 이안(履安)이고, 2남은 증이조판서 이직(履直)이며, 1녀는 감사 서매수(徐逈修)로 달성인이니, 2녀는 군수 홍낙순(洪樂舜)으로 풍산인이다.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도산(陶山) 간좌곤향(艮坐坤向 : 서남향)에 합폄이며 묘표가 있다.

저서로는 《미호집》 20권 10책이 있다

[參考文獻] 英祖實錄. 梅山集(洪直弼). 續朝野輯要. 國朝人物考.資料韓國儒學史草稿(李丙燾, 서울大學校文理科大學國史硏究室, 1959)朝鮮儒學史(玄相允, 民衆書館, 1960). 安東金氏世譜. 자랑스런永嘉後裔(2012) 安東金氏賢人錄(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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