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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8-10-15 12:12

조선시대 행수법(예:절충장군 행 용양위 부호군) 및 군사제도
 글쓴이 : 김참봉
조회 : 2,454  

1)조선시대 행수법 
모든 관직에는 그에 따르는 품계가 일정하게 정해져 있으나, 경우에 따라서 어떤 관직에는 그 관직 자체의 품계보다 더 높은 품계의 관원, 또는 반대로 더 낮은 품계의 관원을 임명할 수 있었습니다. 그중 품계가 높은 사람을 낮은 관직에 임용하는 계고직비(階高職卑)의 경우를 ‘행(行)’, 반대로 품계가 낮은 사람을 높은 관직에 임용하는 계비직고(階卑職高)의 경우를 ‘수(守)’라 합니다.
예를 들면  절충장군(折衝將軍:정3품 당상관)이 부호군(副護軍:종4품)직에 임명되면 절충장군행용양위부호군○○○(折衝將軍行龍驤衛副護軍○○○)라고 칭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2품 자헌대부가 종2품의 관직인 대사헌에 임용되면 資憲大夫행사헌부대사헌 이라하고(예:정헌대부행안동(대도호)부사/통훈대부행평양서윤/어모장군행호분위부사직/선략장군행용양위부사과......또 묘비등에 증숭정대부의정부좌찬성겸의금부사오위도총부도총관行가의대부형조참판겸동지춘추관의금부사오위도총부부총관...이렇게쓰는경우도있음),
반대로 종2품의 가선대부가 정2품인 호조판서에 임명되면 嘉善大夫수호조판서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7품이하의 관원이 2계이상의 높은 관직에 임용 될 수 없고,  6품이상의 관원이 3계이상의 높은 관직에 임용될 수 없다고 규정(경국대전)하였습니다.

절충은 무반 절충장군을 뜻하는 것으로  문반의 통정(통정대부:정3품  당상관)과 동일한 품계 입니다.
전통시대에 남아 있는 자료(족보, 묘비, 묘갈명, 문헌 등)에는 약어를 쓰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습니다.
위에서 지적한 절충장군을 물론이고, 大夫라는 호칭어도 [大夫]라는 글자는 안보이고, 崇綠대부 崇政대부 正憲대부 資憲대부 嘉義대부 嘉善대부 通政대부 通訓대부 중직대부 중훈대부 봉정대부 봉렬대부 조산대부 조봉대부→숭록 숭정 정헌 자헌 가의 가선 통정 통훈 중직 중훈 봉정 봉렬 조산 조봉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이외의 약칭어도 많이 나옵니다.
兵使→兵馬節度使,御將→御營
代將,捕將→捕盜大將,兵議→兵曹叅議,吏判→吏曹判書,호참-호조참판,동중추(同中樞)-동지중추부사,동돈녕-동지돈녕부사  등입니다.

2)조선시대 군사제도
[중앙의 군사 조직]
조선 초기의 군령기관(軍令機關)인 의흥삼군부(義興三軍府)는 삼군진무소(三軍鎭撫所)로, 다시 오위진무소(五衛鎭撫所)로 되었다가 1466년(세조 12)에 오위도총부가 되어 일단 정비되었다. 부대 조직도 처음의 10위(衛)에서 10사(司)로, 다시 12사로 바뀌고, 문종 때 5사가 되었다가 1457년에 오위제도가 정비되었다. 군사 기구 중 군령 계통은 중추부 계열, 오위도총부 계열, 병조 계열 등의 사이에 변동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1464년에 이르러 오위도총부가 병조의 지휘 밑에 들어가면서 병조가 군령의 최고 기관이 되고, 중추부는 실권 없는 기관으로 전락하였다. 따라서, 서반으로 볼 때는 오위도총부가 실질적인 최고 관부가 되었다.
≪경국대전≫에 나타난 오위의 편제는 대체로 병종(兵種)과 지방 분담으로 구성되었다. 중앙군을 이루는 병종의 편제는 의흥위(義興衛)에 갑사(甲士)와 보충대(補充隊), 용양위(龍蚊衛)에 별시위(別侍衛)와 대졸(隊卒), 호분위(虎賁衛)에 족친위(族親衛)·친군위(親軍衛)·팽배(彭湃), 충좌위(忠佐衛)에 충의위(忠義衛)·충찬위(忠贊衛)·파적위(破敵衛), 충무위(忠武衛)에 충순위(忠順衛)·정병(正兵)·장용대(壯勇隊) 등이 소속되어 입직(入直)과 시위 등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한편, 오위는 각기 지방의 병력을 분담, 관할하였다. 의흥위는 서울의 중부와 개성부 및 경기·강원·충청·황해도의 병력을 관할하고, 용양위는 서울의 동부와 경상도를, 호분위는 서울의 서부와 평안도를, 충좌위는 서울의 남부와 전라도, 충무위는 서울의 북부와 함경도의 병력을 각각 관할하였다. 또한, 오위의 각 위는 중·좌·우·전·후의 5부(部)로 나누어 전국의 진관(鎭管)을 망라한 지방 군사를 소속시켰다. 따라서 오위체제는 이중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즉, 중앙군을 망라한 구체적 부대 조직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전국을 망라한 대열(大閱) 등 훈련 체제로서의 성격도 가지고 있었다.

오위의 군계급과 정원 및 품계는 ≪경국대전≫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데, 이는 오늘날의 계급 개념과는 다른 것이었다. 즉, 상호군(上護軍, 정3품) 9인, 대호군(종3품) 14인, 호군(정4품) 12인, 부호군(종4품) 54인, 사직(司直, 정5품) 14인, 부사직(종5품) 123인, 사과(司果, 정6품) 15인, 부장(部將, 종6품) 25인, 부사과 (종6품) 176인, 사정(司正, 정7품) 5인, 부사정(종7품) 309인, 사맹(司猛, 정8품) 18인, 부사맹(종8품) 483인, 사용(司勇, 정9품) 42인, 부사용(종9품) 1,939인 등이 그것이다.

오위의 책임자는 종2품의 겸직인 장(將:오위장)이지만, 실제적인 오위의 최고 지휘관은 정3품 당하관인 상호군(上護軍)이었다.

품계 관직 비고
정1품
종1품
정2품
종2품 장(將) 겸직
정3품 당상
정3품 당하 상호군(上護軍)
종3품 대호군(大護軍)
정4품 호군(護軍)
종4품 부호군(副護軍)
정5품 사직(司直)
종5품 부사직(副司直)
정6품 사과(司果)
종6품 부장(部將), 부사과(副司)
정7품 사정(司正)
종7품 부사정(副司正)
정8품 사맹(司猛)
종8품 부사맹(副司猛)
정9품 사용(司勇)
종9품 부사용(副司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