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遊歸來亭記(춘유귀래정기)

                                                                                                  
조카 시민(時敏)

국문(國門)을 나서서 서쪽으로 30 리, 정자가 날아갈 듯이 강에 임하여 있으니, 이것은 우리 증조할아버지 죽소선생(竹所先生)이 지으신 것으로, 이름을 귀래정(歸來亭)이라고 하는 것이다. 정자를 귀래(歸來)라고 이름 지은 것은 어째서인가? 마을의 이름이 율리(栗里)이니, 선생 만년(晩年)의 출사(出仕)와 은거(隱居)가 마치 도정절(陶靖節)과 상부(相符)하기 때문이다.

대개 정자의 경승(景勝)은, 뒤로는 임록(林麓)이 둘려 있고, 앞으로는 강산(江山)을 면대(面對)하여, 평온(平穩)한 땅을 차지하였고, 안계(眼界)가 시원하게 넓으며, 오류(五柳)와 삼경(三徑)이 예연(翳然)하게 황폐(荒廢)하였으나 그윽하다. 세월(歲月)이 오래되어 장점(粧點)은 거의 다 없어졌으나, 매학당(梅鶴堂)이며, 관란정(觀瀾亭)이, 지형(地形)에 따라 남아 있어서 각각 그 기이(奇異)함을 자랑한다. 사시(四時) 아침저녁으로 풍경(風景)이 무궁(無窮)하니, 세상의 강정(江亭)으로 형승(形勝)으로 이름난 것들이 우리 정자에 비교할 것 같으면 모두 마땅히 저 아래 발치에 있어야 할 것이다.

때는 정축년(丁丑年) 봄에, 우리 백부(伯父)께서 충원(忠原)으로부터 인끈을 던지시고,한 번 순류(順流)에 노를 저어 이 정자에 돌아와 누우셨으며, 중부(仲父)께서는 협읍(峽邑)으로부터 내경(來京)하시어, 이 때 마침 계셔서, 중부(仲父)와 우리 집 어른은 날을 기약(期約)하여 호정(湖亭)에 나가시기로 하였다. 우리 여러 종형제(從兄弟)와 당질배(堂姪輩)가 모두 배종(陪從)하기로 하였다. 이번 행사(行事)에는 어른의 자형(姊兄) 홍경산(洪慶山)처주(處宙) 아저씨와 그 두 아들 구정(九鼎)·구장(九章)도 같이 가기로 약속하였다.

3월 초9일 날이 밝을 무렵에 중부(仲父)께서는 여러 자제(子弟)를 데리고 마포(麻浦)에서 배를 타셨는데 영기(伶妓) 수사인(數四人)이 이에 따랐다. 집의 어른은 어지럼병으로 기마(騎馬)로 가시고 내가 뒤를 따랐다. 오시(午時)가 못되어 정자에 도착하였다. 정자에 올라 백부(伯父)를 뵈었다. 조금 있으니, 배도 정자 앞에 도착하였다. 홍씨(洪氏) 아저씨 부자(父子)는 약속된 사람인데 질병을 칭탁(稱託)하여 오지 않아서 매우 한(恨)이 되었다. 그런데 이튿날 평명(平明)에, 갑자기 달려 왔으니, 뜻밖의 일이었으며 마음에 또한 좋았다.조반(朝飯)을 끝내고 잔치를 정자 위에다 베풀기로 하였다.

이 날은 중부(仲父盛大)의 생신날이라, 당형(堂兄) 이숙(彛叔時敘)이 헌작(獻爵)을 경영(經營)하였으나, 그 잔치 일을 주장(主張)한 사람은 실로 우리 백당형(伯堂兄時佐)이었다.

젊은 사람과 어른 열 두세 사람이 정자 마루에 열좌(列坐)하니, 마루가 좀 좁아 겨우 收容할 수가 있었다. 두 줄로 대좌(對坐)하니, 가운데 행주(行酒)할 길이 없었다. 정자 뒤 임고(林皐)는 지세(地勢)가 그다지 높지 않으며 가운데가 또한 평탄(平坦)하여 백여인(百餘人)이 앉을 만하였다. 그래서 드디어 자리를 언덕 위로 옮겼다.

백부(伯父), 중부(仲父), 가대인(家大人), 홍숙(洪叔)이 차례대로 앉으시고, 당형(堂兄) 도이(道以時佐), 이숙(彛叔時敍), 홍형(洪兄) 숙환(叔煥九章), 나와 집의 아우,당질(堂姪) 춘행(春行), 하행(夏行)이 소목(昭穆=順序)대로 열좌(列坐)하였고, 백부(伯父)의 사위 진사(進士) 송성중(宋誠中이름은 性源)도 자리에 있었다. 다만 홍숙(洪叔)의 장자(長子)인 금오랑(金吾郞) 여중형(汝重兄이름은 九鼎)은 관고(官故)로 기약한 대로 오지 못하였다.

이 모임은 골육(骨肉)과 친척(親戚)의 모임이라, 외빈(外賓)을 허락하지 않았으나, 또한 너덧 사람 향로(鄕老)가 백부의 초청을 받아 별석(別席)에 앉아 있었다. 적자(笛者), 생자(笙者), 축자(筑者), 혜금자(嵇琴者)와 홍분(紅粉기생) 두 쌍이 소나무 사이에 흩어져 앉아, 술을 올리고 음악을 연주(演奏)하였다. 우리 여러 종형제(從兄弟)가 차례대로 일어나 제부(諸父)께 헌수(獻壽)하고, 이어 둘씩 둘씩 배무(拜舞)하였다. 조카들 배행(輩行)에 이르러 그쳤다. 집의 어른이 또 일어나서 백부와 중부에게 헌수(獻壽)하고, 중부가 또 백부에게 헌수(獻壽)하였다. 중부와 집의 어른이 일어나서 석상(席上)에서 춤을 추셨다. 중부(仲父)와 가대인(家大人)은 모두 백발(白髮)이신데도 백부(伯父)를 위하여 일어나 춤을 추신 것이다. 마을의 노유(老幼)들이 서로 붙들고 다투어 구경하며 서로 성사(盛事)라고 하였다. 주석(酒席)이 무르익게 되자, 당백(堂伯)이 먼저 노래를 하고, 제종(諸從)이 서로 이어서 노래하였다. 질배(姪輩)에 이르러 그쳤다. 준부(仲父)·가대인(家大人)이 각각 한 번씩 노래를 하고, 백부(伯父)와 홍숙(洪叔)도 노래를 하였다. 향로(鄕老) 몇 사람이 또한 노래하고 춤도 추었다. 홍분(紅粉)들의 노래와 춤은 일정(一定)함이 없었다.

이 날은, “하늘은 명랑(明朗)하고 공기(空氣)는 맑았으며, 초목(草木)은 바야흐로 무성(茂盛)”하여, 바로 왕희지(王羲之)의 난정(蘭亭) 때와 같았으나, 난정(蘭亭)에서는 사죽(絲竹)·관현(管絃)의 성대(盛大)함이 없었고, “석양(夕陽)은 재산(在山)이요, 인영(人影)은 산림(散林)”이라, 구공(歐公)의 취옹정(醉翁亭)의 놀이와 같으나, 취옹정(醉翁亭)의 놀이에는 친척(親戚)의 즐거움이 있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 “춘야(春夜) 도리원(桃李園)에서 천륜(天倫)의 즐거움을 풀었다.”고 하였으나, 바로 하나의 화원(花園)일 뿐이니, 어찌 능히 이러한 강산(江山)이 있었을 것이며, 또한 그 잔치가 어느 곳에서 한 것인지, 자제(子弟)가 부형(父兄)에게 헌수(獻壽)하는 것이 우리들과 같았는지, 그 여부(與否)를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모임이 진실로 옛날에도 드믄 승사(勝事)인 것이다.

대인(大人, 아버지)이 먼저 사운시(四韻詩)를 지어 그 일을 확장(擴張)하여 크게 하셨다. 온 좌중(座中)의 사람들이 돌려보고 풍송(風誦)하였다. 대인(大人)께서 여러 자제(子弟)들에게 명하여 화운(和韻)하라 하시니, 소자(小子)가 감히 명을 받아 감히 먼저 이룬 것이 있으니 다음과 같다.

“큰 솔은 운치 있는 날에, 소리가 생황(笙簫)과 섞여서 울리고,

물가 구름과 섬의 안개는 저녁 연석(宴席)을 빛나게 비추도다.“

사방의 좌석이 단란(團欒)하여, 임학(林壑)이 어두워지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잔치가 끝나 객(客)은 떠나니, 백부와 중부는 먼저 취한 몸이 부액(扶腋)을 받아 정자로 돌아가 베개를 베고 누우셨고, 집의 어른은 흥(興)이 나는 대로 홍숙(洪叔)과 함께 걸어서 앞 강으로 내려가서 출쩍 배에 올라타셨다. 우리 여러 종형제는 한 사람도 따라가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아버지께서는 어제는 배를 타지 않으셨는데 오늘은 먼저 배에 오르셨다. 어제는 병 때문이었고 오늘은 흥(興) 때문이었다. 흥(興)이 극심(劇甚)하면 병은 잊을 수도 있다. 또한 바람이 자서 강이 평탄(平坦)하지 않은가? 말을 주고받는 것도 병에 지장이 없었다.

배를 띄우자마자, 舟才放, 제월(霽月)은 동토(東吐)하고, 선두(船頭)에서 주악(奏樂)하니, 월색(月色)은 점신(漸新)이라. 船屋선옥(編茅)은 띠로 엮었는데, 그것이 달을 가리는 것이 싫어서 다 없애버렸다. 드디어 두 가인(佳人)으로 하여금 타루(柁樓) 위에서 대무(對舞)를 추게 하니, 금파(金波)는 영롱(玲瓏)하게 옷과 얼굴을 비추어 번쩍거린다. 중류(中流)에 떠 있으면서 몽롱(朦朧)한 연수(烟樹) 사이를 바라보니, 하나 둘 염각(簾閣)이 높고 낮게 보일락 말락 어른거리는데, 물을 향하여 창을 열어놓아, 등촉(燈燭)이 희미하게 밝고, 아득한 것이 마치 단청화도(丹靑畵圖)와 같다.

이것이 우리 정자이니, 내가 당백(堂伯)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멋있습니다. 우리 정자를 보십시오. 배 위에서 정자를 바라보니 정자가 더욱 멋있는데, 정자에서 배를 바라보면 또 얼마나 멋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술을 몇 순행(巡行) 하고 연회(沿洄)하며 내려갔다. 기암(奇巖)과 층벽(層壁)을 두루 거쳐서 다 지나가니, 연파(烟波)는 넓고 아득한데, 일망무제(一望無際)이다. 사람이 월변(月邊)에서 노니, 배는 공중(空中)에 있는 것 같고, 성하(星河)의 그림자가 흐르니, 술동이와 술잔을 출렁이는 물에 띄웠다. 때때로 장풍(長風)이 수면(水面)으로 불어오니, 표표(飄飄)한 것이 마치 날개가 생겨서 신선(神仙)이 되어 올라가는 것 같다. 이렇게 되니, 배 안의 사람은 악기(樂器)를 잡고 시끄럽게 불기도 하고, 혹은 앉기도 하고 혹은 서기도 하여 피리와 북이 또 일시(一時)에 큰 소리로 흐느끼니, 맑은 상조(商調)의 소리와 급한 우조(羽調)의 소리가 그 소리를 시원하게 다하였다. 강물 빛이 탕양(蕩漾)하는 사이, 황홀(恍惚)하게 어룡(魚龍)이 출몰(出沒)하는 것을 보았다.

밤이 깊어서야 배를 돌려 돌아와, 정자 가운데서 서로 베개를 빌어 잠들었다가 깨니, 해가 장대 세 개만큼이나 높았다.

從子 時敏

出國門而西三十里, 有亭翼然臨江, 是我曾王考竹所先生所築, 而名曰歸來亭者也. 亭以歸來名, 何也, 村之名栗里, 以先生之晩年出處, 如陶靖節相符故爾. 盖亭之勝, 背環林麓, 面對江山, 占地平穩, 眼界寬闊, 五柳三徑翳然其幽, 歲月浸久粧點殆盡, 梅鶴之堂, 觀瀾之亭, 隨地形而在, 各擅其奇, 四時朝暮風景無窮, 世之江亭以形勝名者, 比諸吾亭, 皆當在下風焉, 歲丁丑春, 我伯父自忠原投紱, 一棹順流歸臥是亭, 仲父自峽邑來京, 適在是時, 仲父與我家大人, 約日出湖亭, 吾群從兄弟曁堂姪輩將齊陪, 此行大人姊兄洪慶山處宙叔及其兩胤九鼎九章亦約同往, 三月初九日昧爽, 仲父携諸子弟乘舟麻浦, 伶妓數四人隨之, 家大人病眩以騎行, 余隨後, 未午至亭, 登亭拜伯父, 小頃, 舟亦到亭前矣, 洪叔父子以約中人托疾不至, 甚以爲恨, 翌日平明, 忽馳來, 出人不意, 意亦自好矣, 旣朝飯, 將設宴亭上, 是日則仲父初度日也, 堂兄彛叔時敘經營獻爵, 其主張宴事者, 實我伯堂兄時佐也. 少長十二三人列坐亭軒, 軒少狹僅可容, 兩行對坐, 中無行酒路矣, 亭後林皐勢不甚高而中且坦, 可坐百餘人, 遂移席皐上, 伯父, 仲父, 家大人, 洪叔以次坐, 堂兄道以, 彛叔, 洪兄叔煥, 余與舍弟, 堂姪春行, 夏行又昭穆列坐, 伯父女壻晉士宋誠中性源亦在座, 獨洪叔長子金吾郞汝重兄以官故未赴約. 玆會也, 會骨肉親戚, 不許外賓, 而亦有四五鄕老被伯父招, 別席而坐. 笛者, 笙者, 筑者, 嵇琴者, 紅粉二雙散坐松樹間, 酒進樂作, 吾群從兄弟以次起壽諸父, 仍兩兩拜舞, 至姪輩而止, 家大人又起壽伯父·仲父, 仲父又壽伯父, 仲父·家大人又起舞席上, 仲父·家大人俱以白髮爲伯父起舞, 村里老幼扶携爭觀, 皆以爲盛, 酒闌, 堂伯先歌, 諸從相繼而歌, 至姪輩而止, 仲父·家大人各一歌, 伯父·洪叔亦歌, 鄕老數人亦歌且舞, 紅粉之歌且舞者無常焉, 是日也, 天朗氣淸, 草木方茂, 正如羲之之蘭亭時, 而蘭亭則無絲竹管絃之盛, 夕陽在山, 人影散林, 則與歐公醉翁亭遊, 而醉翁之遊未聞有親戚之樂, 春夜桃李園天倫敘樂, 而直一花園耳, 何能有此江山, 且不知方其宴也, 子弟之獻壽父兄有如吾輩樂否, 然則今日之會, 信乎罕古之勝事也, 大人首爲四韻詩以張大其事, 一座人輪看風誦, 大人命諸子弟和韻, 小子承命敢先, 有成, 長松韻日響雜笙簫, 汀雲島霞輝暎夕宴, 四座團欒, 不覺林壑之暝, 宴罷, 客去, 伯父·仲父, 先扶醉歸亭就枕而臥, 家大人乘興與洪叔步下前江, 翩然上舟, 吾群從兄弟無一人不隨者, 大人昨日不乘舟, 今日先上舟, 昨日病也, 今日興也, 興劇病可以忘, 且風定江平, 薄言容與, 亦不妨於病, 舟才放, 霽月東吐, 船頭奏樂, 月色漸新, 船屋編茅, 嫌其翳月, 盡去之, 遂使二佳人對舞柁樓上, 金波玲瓏, 照閃衣顔, 浮在中流, 望見朦朧烟樹之間, 一二簾閣高低隱映, 向水開窓, 燈燭微明, 杳然如丹靑畵圖, 是吾亭也, 余顧謂堂伯曰, 奇哉吾亭, 舟上望亭, 亭更奇也, 不知亭上望舟, 又將幾許奇也, 酒數三行, 沿洄而下, 奇巖層壁歷歷過盡, 烟波浩渺, 一望無際, 人遊月邊, 舟在空中, 星河影流, 泛灩樽觴, 有時長風水面吹來, 飄飄乎若將羽化而登仙, 於是, 舟中人取樂喧呼, 或坐或立, 簫鼓又一時轟咽, 淸商急羽, 快盡其聲, 江光蕩漾之間, 恍惚見魚龍之出沒, 夜深廻船而歸, 相與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