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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4-12 19:38
곡운(谷雲)선조 묘소 사초시업
 글쓴이 : 김관동
조회 : 152  

2020. 4. 8~9.

         

오문(吾門)의 종손으로 생전에 윗대 선조들의 묘표와 묘갈을 직접 쓰고 세우셨던 곡운 휘 수증(壽增) 선조의 묘소를 4년 전 종손 주현(柱顯)이 종회의 명을 받아 두 차례에 걸쳐 사초를 해 드렸는데, 새해 들어 이 지역에 멧돼지가 출연하여 산소를 훼손하는 바람에 이틀간 종회 임원들이 모여 새로이 산소에 사초를 해 올리었다.

시공업체는 작년 천안 광덕산자락에 있는 연천공 휘 이양(履陽) 선조의 사초를 해 올렸던 경험이 풍부한 산소전문 조경업체이다.

곡운 선조는 인조 2(1624) 갑자 414일 출생하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년 전남 영암에서 유림들이 버스를 대절하여 이패동에 계시는 문곡 휘 수항(壽恒)선조의 산소와 이곳 석실를 찾아와 곡운선조의 산소에 성묘를 하고 가던 산소이다.

아버지는 동지공[(同知公) 동지중추부사 증영의정 광찬(光燦 : 1597~1668)]과 어머니는 증정경부인 연안김씨(1596~1634)의 장남으로 영의정 수흥(壽興 : 1626~1690), 영의정 수항(壽恒 1629~1689)의 형이다.

그리고 정부인 청주한씨(1613~1699)의 소생인 적성현감 수징(壽徵 1636~1706), 진사 수응(壽應 : 1640~1695), 학관 수칭(壽稱 : 1642~1704), 강동현감 수능(壽能 : 1644~1704)의 형이기도 하다.

공이 세 살 때 병자호란(1627)이 일어나 인조 15(1637)부터 3년간 안동 소산 청원루에서 할아버지 문정공 청음 휘 상헌(尙憲 : 1570~1652)의 가르침을 받으셨다.

효종 1(1650) 경인 27살에 증광시 12위로 급제. 생원이 되어 효종 3(1652) 세마(洗馬)가 된 뒤, 이어 형조정랑, 공조정랑을 거쳐 각사(各司)의 정()을 두루 역임하였다.

젊어서부터 산수를 좋아하여 금강산 등 여러 곳을 유람한 뒤 기행문을 남기기도 하였다. 특히 안동의 시조묘를 비롯하여 선대의 묘소에 가장 많은 글을 지어 올리신 분이다.

현종 11(1670)에는 지금의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영당리에 복거(卜居=살만한 곳을 가려져 정함)하실 땅을 마련하고 농수정사(籠水精舍)를 지은신 뒤, 현종 13(1672) 715일 안악군수(安岳郡守)에서 물러나셨다.숙종 1(1675) 성천 부사로 있던 중, 동생 수항(壽恒)이 우암 송시열(宋時烈)선생과 함께 기사사화 때 유배되자 벼슬을 그만두시고 농수정사로 돌아가셨다.이때 주자의 행적을 모방하여 그곳을 곡운(谷雲)이라 하고, 곡운구곡(谷雲九曲)을 경영하면서 화가 조세걸(曺世傑)을 시켜 곡운구곡도=谷雲九曲圖를 그리게 하는 등 글씨와 그림에 관심을 기울였다.

숙종 15(1689) 기사사화로 송시열(宋時烈)과 동생 수항(壽恒)이 죽자, 벼슬을 그만두고 화음동(華蔭洞)에 들어가 정사(精舍)를 짓기 시작하였다.5년 뒤 숙종 20(1694) 갑술옥사 후에 다시 관직에 임명되어 한성부 좌윤, 공조 참판 등에 제수 되었으나, 모두 사직하고 그 후로 다시 관직에 돌아가지 않으셨다.세상을 피해 화악산(華嶽山) 골짜기로 들어가 은둔하여 성리학에 심취하여 북송(北宋)의 성리학자들과 주자의 성리서를 탐독하셨다.

그 가운데에서 특히 소강절(邵康節=중국 북송의 유학자 邵雍을 그 시호로써 일컫는 이름의 음양소식관(陰陽消息觀)을 정사(精舍)의 조경에 응용하였고, 또한 계곡에 있는 바위들에 천근석(天根石), 월굴암(月窟巖)등 소강절의 사상시(思想詩)에 나오는 음양소식관(陰陽消息觀)을 담은 이름도 붙여 조경을 하셨다.

이들의 유적은 지금도 남아 있어 성리 사상이 건축에 미친 영향을 구체적으로 후학들에게 알려 주고 있다.

숙종 27(1701) 34일에 졸하니 향년 78세였다.

배위는 정부인 창령조씨로 인조3(1627) 정묘에 태어나 현종 12( 1671) 신해 1221345세에 졸하였다. 아버지는 문충공 회곡(晦谷) 한영(漢英)이고, 할아버지는 참판 문수(文秀)이며, 증조는 주부 경인(景仁)이니, 외조는 참의 이지선(李祗先)으로 본관은 성주이다.

슬하에 34녀를 두니, 1남은 성천부사 창국(昌國)이고, 2남은 삼고재(三古齋) 창숙(昌肅)이며, 3남은 홍문관 교리 창직(昌直)이다. 1녀는 홍문도(洪文度)로 남양인이고, 2녀는 아버지가 봉사인 이병천(李秉天)으로 한산인이며, 3녀는 아버지가 판서인 신진화(申鎭華)로 평산인이니, 4녀는 목사 유명건(兪命健)으로 기계인(杞溪人)이다.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 석실 선조내(先兆內) 경좌갑향(庚坐甲向 : 동북향)에 합폄이다. 묘표는 조카 삼연 창흡이 ()하고 대제학 김진규(金鎭圭)가 썼다.

춘천의 춘수영당(春睡影堂)에 제향 되었으며, 저서로는 곡운집(谷雲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