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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0-07 19:51
17세조 효절공 휘 수전
 글쓴이 : 김관동
조회 : 75  

17세조 효절공 휘 수전

                      (孝節公 諱 壽全)

공은 인조 3(1625) 을축에 출생하였으며 생월일은 미상이다.

현조는 서윤공[(庶尹公) 평양부서윤 증이조판서 대제학 번()]이고, 고조는 신천공[(信川公) 신천군수 증좌찬성 생해(生海)]이며, 증조는 도정공[(都正公) 돈령부도정 증영의정 극효(克孝)이니, 할아버지는 파조인 문충공[(文忠公) 우의정 선무원종일등공신 증영의정 선원(仙源) 상용(尙容)]이요, 아버지는 동원군[(東原君) 진무공신(振武功臣) 통정대부 평강현감 광소(光熽)]와 어머니 청주한씨의 34녀 중 장남으로 수장(壽長)과 절충장군 수연(壽延)의 형이다.

인조 14(1736) 을해 121일 청군 7만과 몽골군 3만 한군(漢軍) 2만 도합 12만이 국경을 침략하여 10여일 만에 한성에 도착하였다.

할아버지 선원공께서는 1213일 호란이 일어나자 묘사주(廟社主)를 받들고 빈궁과 원손(元孫)을 수행하여 강화도로 피난을 맡으셨다.

인조 15(1637) 병자 122일 강화성이 함락되자 청병이 남문 밑에까지 이르렀다.

선원공은 손자인 공을 가인(家人)에게 명하기를 손자와 함께 몸을 피하라고 하였으나 공은 거절하며 마지막까지 할아버지를 모시겠다고 하였다.

결국 종인(從人) 안선승(安善承)과 함께 남문루(南門樓)에 있던 화약에 할아버지의 명을 받고 화약궤(火藥櫃)에 불을 붙리어 장렬히 분사하였다.

이때 공의 나이 열 세 살이었다.

이 말이 전해지자 나라에서는 효로 정려(旌閭)케 하고 문충공 산소 옆에 함께 묘를 조성하여 건좌손향(乾坐巽向 : 동남향)에 나란히 묻히게 하였다.

 

참고문헌仁祖實錄 仙源遺稿 安東金氏世譜 典故大方 丙子胡亂 四絶臣 金尙容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