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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0-28 10:14
庚子(2020) 四忠書院 秋季 時享
 글쓴이 : 김관동
조회 : 61  

2020. 10. 24.(토요일)

 

오전 11시 경기도 하남시 상산곡동 100-2에 위치한 사충서원에서 경자년 추계시향 및 정기총회가 열렸다.

아침 9시 신길역에서 서윤공파 권진(權鎭)사무장과 만나 지하철 5호선 역 3번 출구에서 대종중 수일(守鎰) 사무총장과 합류하여 감악산 밑에 있는 사충서원을 찾으니 미리와 있던 철동(澈東) 전임 서윤공파 사무장과 만나 수인사를 나누고 행사장에 입장하였다.

먼저 철동 형님이 아헌관으로 분정되어 이번에 새로이 장만한 삼베 제례복으로 갈아입고 제향에 동참하였다.

사충서원은 1725(영조1) 노론 4대신이었던 몽와(夢窩) 휘 창집(昌集) 선조를 위시하여 이이명(李頤命) · 이건명(李健命) · 조태채(趙泰采)를 제향하기 위하여 노론계 관료와 유생이 추진하고 국가의 보조에 의하여 충절의 의표(儀表)가 서린 사육신(死六臣) 묘가 있는 경기도 과천(노량진)에 건립되었던 서원이다.

이들 4대신은 경종 때 왕세제(王世弟 : 후일의 英祖)를 책봉하고 대리청정(代理聽政)을 하는 문제로 소론의 미움을 사서 1722(경종2) 노론계의 역모사건(신임옥사)에 연루되어 죽음을 당하였는데, 왕세제가 영조로 즉위한 뒤 노론정권이 수립되면서 신원(伸寃)되고 서원이 건립된 것이다.

건립과 동시에 국가로부터 사액을 받았다.

그러나 1727년의 정미환국(丁未還局)으로 소론정권이 들어서서 신임옥사를 역()으로 번복하고 4대신을 다시 죄인으로 만들자 이 서원도 따라서 철폐되는 수난을 격어야 했었다.

그 뒤 1740년의 경신처분(庚申處分)으로 4대신이 다시 충신으로 판정되었으나, 한동안 재건되지 않다가 소론세력이 완전히 몰락한 1756년에야 서원을 복설하고 사충서원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와 같이, 이 서원은 노론·소론 사이의 시비여하에 따라 철폐와 복설이 거듭되는 우여곡절을 겪을 만큼 당색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으나, 영조 이후의 역대 왕들이 모두 영조의 후손이었던 관계로 영조에게 충성을 다한 4대신의 서원이라 하여 특별한 은전(恩典)을 받았던 것이다.

이에 따라 대원군에 의한 서원철폐 단행 때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되었다.

그 후 1927년 봄에 이 곳이 철도용지(鐵道用地)로 편입됨에 따라 당시 고양군 한지면 보광동(현재의 서울특별시 보광동)으로 이건하였다가 6·25때 파괴되었다.

1968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으며, 매년 봄·가을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가 요즘에는 일 년에 한 번씩 가을에 추향제를 모시는 사당이 되었다.

금년에는 특별히 김성호(경주인) 하남시장이 초헌관으로 분정되어 이제는 하남의 지방문화재로 각광을 받는 곳으로 변천되었다.

시향을 마치고 사당에서 나와 정원에 마련된 식찬(食饌)을 놓고 사단법인 사충서원정기총회를 가졌다.

결산 승인과 예산 심의는 원안대로 통과한 후 임기 만료된 김형진(金兄鎭) 안동김씨 종문이사를 김철동(金澈東) 몽와공 종손으로 이사를 선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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