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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2-22 20:11
임진각 자유의 다리
 글쓴이 : 김관동
조회 : 46  
 임진각 자유의 다리

2021. 2. 13.(토요일)

임진각 전망대에서 임진강을 굽어보고 내려와 바로 앞에 있는 망배단을 지나 자유의 다리를 찾아갔다.

자유의 다리는 임진강의 남과 북을 잇는 유일한 통로로 원래 경의선 철교는 상ㆍ하행 2개의 교량이 있었으나 폭격으로 파괴되어 교각만 남아있던 것을 후에 전쟁 포로들을 통과시키기 위하여 서쪽 교각 위에 철교를 복구했고 그 남쪽 끝에 임시 교량을 가설했다.

예전에는 노상리 쪽 자연 마을의 이름을 따서 독개다리라고 불렸으나 1953년에 공산군의 포로였던 12,773명의 국군과 유엔군이 자유를 찾아 귀환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명명되었다.

자유의 다리는 6개의 경간(徑間)으로 이루어진 목조 평교(平橋)형식으로 길이는 83m, 폭은 4.5~7m, 높이는 8m 내외이다.

순수한 목구조는 아니고 인장력을 많이 받는 부분에 철재를 사용하여 만든 혼합 구조이다.

통나무가 4개씩 4열로 세워진 교각 위에 사각 받침목과 I자형 강(鋼)으로 만 든 철제 보를 우물 정(井)자형으로 짰고, 그 위에 장선(長線)을 놓인 후 나무로 만든 상판을 올려서 마감하였다.

특히 구조적으로 안정을 기하기 위해 수평재와 가새가 많이 사용되었다.

판문점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 와 함께 6·25 전쟁의 비극을 상징하는 이 다리는 7·4 공동성명 이후 남북회담 대표 들이 지나다닌 길목이 되었다.

자유의 다리는 임시로 가설된 교량이므로 건축적으로 뛰어난 점은 없으나 ‘자유로의 귀환’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전쟁을 대표하는 근대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1953년 한국전쟁 포로 1만 2,773명이 이 다리를 건너 귀환하였기 때문에 '자유의 다리'라고 명명되었다.

원래 경의선 철교는 상·하행 2개의 다리가 있었으나 폭격으로 파괴되어 다리의 기둥만 남아 있었는데 전쟁포로들을 통과시키기 위하여 서쪽 다리 기둥 위에 철교를 복구하고 그 남쪽 끝에 이 임시다리를 설치했다.

당시에는 포로들이 차량으로 경의선 철교까지 와서는 걸어서 이 다리를 건너왔다고 한다.

자유의 다리는 길이 83m, 폭4.5m, 높이 8m 내외이다.

다리는 나무를 짜맞추어 만들었는데 특히, 힘을 많이 받는 부분은 철재를 혼합하여 사용하였다.

임시로 설치한 다리이므로 건축적으로 뛰어난 점은 없으나 '자유로의 귀환'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전쟁의 대표적인 유산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