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Contact Us
    자유게시판
    종회활동
    동영상자료
    사진 자료
    자 료 실
방문자
198
239
3,628
718,984
 
>> > 게시판 > 사진자료  
 
작성일 : 22-01-05 03:24
임인년 정초 안양사(安養寺)
 글쓴이 : 김관동
조회 : 38  

임인년 정초 안양사(安養寺)

2022. 1. 4.(화요일)

 

신축년 구랍(舊臘)에 만나 오찬을 하기로 하였다가 안양에 사는 남현이 친구

가 속이 좋지 못하다고 하여 미루었던 약속을 신년 정초에 하기로 하여 오전

11시 신길역에서 영성이 친구와 만나자고 약속했는데 아침에 전화를 하니

12시에 안양 식당으로 가겠노라고하였다.

혼자서 시흥사거리로 가 종춘이 친구와 만나 새해 인사를 나누고 안양 국수

집으로 유명한 구포식당에 도착하니 정오가 거의 되어서였다.

남현이 친구가 도착하여 새해 인사를 나누고 영성이 친구를 기다리는데 경우

회 사정으로 불참을 통보해 왔다.

셋이서 잔치국수로 점심을 때우고 작년에 방배동에 사는 우림친구와 지난 가

을 일요일에 들렸다가 출입통제를 당했던 안양사를 찾아갔다.

평일이어서 그런지 출입통제 가림막이 없어 차로 안양사 맨 위에 있는 주차

장에 차를 주차하였다.

우리나라에 안양사라는 절은 두 군데 있다.

이곳 안양에 있는 안양사 보다 먼저 창건 되었다는 안양사가 있는데 그곳은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에 있었던 절로 그 규모가 대단하였다고 한다.

유점사본말사지(楡岾寺本末寺誌)에 의하면, 안양사(安養寺)는 서기

863(경문왕 3) 사굴산문(闍崛山門)의 개창조인 범일(梵日) 국사가 창건했

다고 한다.

창건 당시 극락삼성(極樂三聖 : 아미타삼존불)은 나무로, 관세음보살 2(

)는 돌로 만들어 봉안했기 때문에 안양사라고 이름 지었다고 하였다

조선시대인 1398(태조 7)에 조선을 개국한 무학(無學)이 안양사를 다시 세

웠고, 1621(광해군 13)에 이름(頤凜)대사가 금강산에서 철원으로 와서 옛터

에 건물을 짓고 대승암(大乘庵)이라 불리었다.

1884(고종 21) 성월(性月)화상이 사원 전체를 수리하였으며, 1890(고종

27)에는 진각(眞覺)대사가 안양사의 산신각(山神閣)을 개축하기 시작해 6

후인 1896년에 완성하였다.

1904년에는 강백(講伯 : 경론을 가르치는 강사의 존칭) 진용성(陳蓉城)이 화

(化主)가 되어 법당 6칸을 중건하였고, 다음 해에는 요사를 다시 건축하는

동시에 후불 탱화와 신중 탱화를 새롭게 조성하였다.

1912년에는 월운선사가 중국 상해로부터 종 2구를 조성해 와서 안양사와 복

혜암(福慧庵) 에 두었다.

1940년대 촬영된 사진 자료에 사찰 건물 여러 채가 확인되고 있는 것으로 보

아 당시까지 안양사가 존재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는데, 이후 6·25전쟁 때 모

두 불타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이곳에 있는 안양사가 유일한 우리나라의 사찰 중 안양사를

대표하는 절이기도 하다.

이곳에 있는 안양사는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1동 산 27번지에 위치하고 있는 절로 서기 900(신라 효공왕 4) 훗날 고려 태조가 된 왕건이 금주(지금의 시흥)와 과주(지금의 과천) 등의 지역을 징벌하려고 삼성산을 지나다가 산꼭대기의 구름이 5가지 빛을 띠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살피게 했다고 한다.

이에 구름 밑에서 능정(能正)이란 노스님을 만났는데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보니 왕건의 뜻과 같으므로 지금의 장소에 안양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 안양시의 명칭도 이 절에서 유래하였다고 되어 있었다.

안양사를 둘러보고 안양유원지에 있는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추억담을 나누고 귀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