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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1-28 05:46
서오릉 대빈묘(大嬪墓)
 글쓴이 : 김관동
조회 : 37  

서오릉 대빈묘(大嬪墓)

2022. 1. 25.(화요일)

 

 

임인년 새해를 마지하여 서윤공파 회장이신 조한(鵰漢) 족숙 내외분과 두가족이 신년하례차 경기도 고양에 있는 서오릉 앞 올갱이 해장국집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경기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로 334-32에 자리하고 있는 세칭 장희빈의 묘인 대빈묘를 돌아보았다.

대빈묘는 조선 19대 숙종의 후궁이자 20대 경종의 사친인 옥산부대빈(희빈) 장씨의 묘이다.

대빈묘는 후궁 묘제의 형식에 맞게 조성하였다.

문석인, 망주석, 장명등, 상석, 향로석, 혼유석, 묘표석을 배치하였고, 봉분을 보호하기 위해 곡장을 둘렀다.

묘표석에는 有明朝鮮國玉山府大嬪張氏之墓(유명조선국 옥산부대빈장씨지묘)’라고 새겨져 있다.

1701(숙종 27)에 희빈 장씨가 세상을 떠나(자진(自盡)), 이듬해인 1702(숙종 28) 양주 인장리(현 구리시 인창동)에 묘를 조성하였다.

그러나 묘소 자리가 불길하다 하여 1719(숙종 45)에 광주 진해촌(현 광주시 오포읍 문형리)으로 이장하였다.

그리고 1970년 다시 묘소를 이곳 서오릉 경내로 이장하였다

옥산부대빈 장씨(재세 : 1659~ 1701년 음력 10)는 본관이 인동인 옥산부원군 장형과 파산부부인 윤씨의 딸로 1659(효종 10)에 태어났다.

숙종대의 대왕대비였던 장렬왕후 조씨를 모시는 궁녀로 입궁하여, 숙종의 총애를 받아 1686(숙종 12)에 숙원(淑媛, 내명부 종4품 후궁)이 되었다.

소의(昭儀)의 품계에서 1688(숙종 14)에 숙종의 첫 아들 윤(경종)을 낳아 희빈이 되었다.

숙종은 희빈이 낳은 왕자를 원자(元子)로 책봉한다는 뜻을 밝히자 당시 집권세력인 서인은 강력하게 반대하였고, 이 일로 인해 기사환국이 발생되어 남인 정권이 들어서게 되었다.

숙종은 환국 이후 인현왕후 민씨를 왕비의 자리에 폐위하고 희빈을 왕비로 책봉하였다.

그러나 1694(숙종 20)에 인현왕후 복위 운동과 숙빈 최씨 독살사건이 발단이 되면서 갑술환국이 발생되어 서인 정권이 다시 들어서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현왕후가 다시 복위되고 장씨는 다시 희빈으로 강등되었다. 그 후 희빈은 1701(숙종 27)에 인현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인현왕후를 무고한 혐의(무고의 옥)가 밝혀져 자진하였다.

아들 경종이 즉위하자 1722(경종 2)에 왕의 사친으로 옥산부대빈(玉山府大嬪)으로 추존되고, 사당의 이름은 대빈궁, 묘소의 이름을 대빈묘라 하였다.

서오릉 경내는 5개의 릉()2개의 원() 그리고 1개의 묘()이 있으니 그중의 하나인 장희빈의 묘가 바로 이곳이다.

태조 이성계의 무덤인 건원릉 다음으로 규모가 큰 서오릉 안에서 관광객의 발길이 가장 많은 이곳 대빈묘가 지금은 서오릉을 대표하는 관람지로 변하여 예나 지금이이나 명성이 나야 인기가 있음을 실증하는 곳이 이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