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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6-28 04:31
인제 박인환(朴寅煥) 문학관
 글쓴이 : 김관동
조회 : 32  

인제 박인환(朴寅煥) 문학관

2022. 6. 2.(목요일)

 

어제는 제8회 지방선거일이었다.

밤새워 개표상황 방송으로 하룻밤이 새로울 정도로 긴장하였는데 특히 경기지사의 개표상황은 전 국민을 개표장으로 이끄는 마력을 발휘하였다.

오후 7시 반 부터 발표한 투표 여론조사에서 김은혜 국민의힘 후부가 될것이라는 예상과 함께 새벽 5시 까지 김은혜후보가 민주당의 김동연 후보를 앞서다가 개표 마감 두시간전부터 역전을 하여 그야말로 한편의 드라마를 연출하는 개표상황이었다.

12년 전 서울시장에 나왔던 한명숙 전총리와 오세훈 시장과의 역전드라마를 재연출하는 장면이었다.

아침 5시 반에 집을 나와 인제전통시장에 도착하여 엄마밥상 식당에서 조반을 마치고 하루 종일 감리를 한 뒤 통신사 시공을 맡은 소장의 소개로 스카이 힐 호텔에 방을 정하고 짐을 풀은 후 카메라를 들고 맨 먼저 인제 관광지도에 있는 박인환 문학관을 들렀다.

박인환 문학관은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인제로 156번길 50에 위치하고 있으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인 문학관이었다.

시인 박인환은 1926년 강원도 인제 출신이다.

인제 공립 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머리가 좋고 똑똑하여 아버지는 아들 교육을 위해 면사무소를 그만두고 서울로 생활 터전을 옮겨 이곳에서 생산되는 나무를 벌목하는 산판업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인제에서 서울 종로구 원서동 언덕배기로 이사를 하고, 덕수 공립 보통학교 4학년에 편입하였다.

이어 경기 공립 중학교[현 경기 고등학교]로 진학하였는데, 박인환은 이 무렵 영화와 문학의 세계로 빠져들어 공부 대신에 일어로 번역된 세계 문학 전집과 일본 상징파 시인들의 시집을 열독하느라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결국 교칙을 어기며 영화관을 출입한 것이 문제가 되어 경기 공립 중학교를 중퇴하고 말았다.

이후 한성 학교 야간부를 거쳐 황해도 재령의 명신 중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강요로 관립 학교인 평양 의학 전문학교에 진학하였지만, 해방되자마자 학업을 중단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박인환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3가 낙원동 입구에 헌책방 마리 서사(茉莉書肆)를 경영하였다.

마리 서사를 중심으로 당시 시인이나 소설가와 화가들이 모여들어 한국 모더니즘 시운동의 모태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94612, 국제 신보거리라는 작품을 발표하여 시인으로 등단하였다.

1948년 봄 마리 서사를 폐업하고 1949년 김경린·양병식·김수영·임호권·김병욱 등과 동인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발간하여 본격적인 모더니즘의 기수로 각광을 받았다.

경향 신문사에 입사 1949년 동인 그룹 '후반기'를 발족하여 활동하였다.

그리고 한국동란이 일어나고 1951년 경향 신문사 본사가 있는 부산과 대구를 왕래하며 종군 기자로 활동하였다.

종군 기자로 활동하면서 신호탄, 고향에 가서, 문제되는 것등의 시를 썼다.

1951년 부산에 모인 김경린·김규동·조향·이봉래와 더불어 '후반기' 동인을 결성하고 약 4년간 활동하였다.

1955년 대한 해운 공사의 남해호(南海號)라는 외항선을 타고 외국으로 나갔다. 석달 뒤에 돌아와 아메리카 시초(詩抄)라는 작품을 선보였다.

박인환은 김수영·김경린·조향 등과 더불어 1950년대 모더니즘 시의 대표적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도시적 감수성과 현대 의식을 중시하고 전위적 기법을 실험하며 문명 비판적인 주제를 주로 다루었다.

따라서 그들의 시에는 지적(知的)인 요소와 서구적 기풍이 많다.

그런 가운데서 박인환은 가장 주정적(主情的)인 기질을 가진 인물로서 비애와 절망의 감정을 노래하는 데 치중했고, 감상주의에 빠져드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1956년 페노발비탈을 과량을 섭취하고 심장마비로 자택에서 사망하였고, 묘소는 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동묘지 내에 있어 시를 애호하는 뭇사람들의 안식처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죽기 3일 전,

지금의 국민배우인 최불암씨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선술집 은성에서 막걸리를 마시다 종이에 뭔가 써 내려갔다.

동석했던 극작가 이진섭이 즉석에서 작곡했고, 테너 임만섭이 노래를 불렀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이렇게 만들어진 시가 세월이 가면이다.

이날 첫사랑 여인이 묻혀있는 망우리를 다녀왔다고 한다.

그는 1956320일 밤 폭음 끝에 심장마비로 서른 살의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망우리 묘지에 묻혔다.

죽어서도 여전히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인제군은 그의 생가터에 박인환 문학관을 짓고, 박인환 문화제를 개최하는 등 선양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선양사업을 전면 재수정하기 위해 문화제를 취소하고, 대구의 김광석 거리 등을 벤처마킹하고, 인물 브랜드화를 통해 지역을 알릴 수 있는 연구용역을 실시하기로 했다.

여기에 시인의 묘 이전도 포함됐다고 한다.

고향을 사랑했던 시인은 시인을 사랑하는 고향 사람들의 부름을 어떻게 생각할까.

시인의 귀향이 기다려며 문학관을 나와 합강정으로 발길을 옮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