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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6-28 04:40
내설악(內雪嶽) 백담사(百潭寺)
 글쓴이 : 김관동
조회 : 31  

내설악(內雪嶽) 백담사(百潭寺)

2022. 6. 20.(월요일)

 

오후 4시가 조금 넘어 인제읍 전통시장 지중화공사 감리를 마치고 서둘러 강원도 인제군 북면 백담사로 746(용대2690)에 있는 백담사를 향하여 네비에 입력하고 출발하였다.

20분으 조금 지나 백담사 주차장에 도착하여 차를 파킹하고 백담사를 왕복하는 전용주차장으로 올라갔다.

마침 오후 5시에 출발하는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버스비는 2.500원으로 미리와서 기다리는 4명의 승객들과 함께 출발을 기다리고 있는데 51분이 넘어 기가가 승차하여 백담사로 향하였다.

재직시 남부지점에 있을 때 들렸던 백담사이다.

백담사는 강원도 인제군의 북쪽 내설악산 대승령 북쪽에 위치하는 절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 절은 본래 낭천(화천)에 있던 비금사였는데, 절 근처에 사냥꾼들이 자주와 사냥을 하여 불도에 어긋난 짓을 하므로, 650년 전에 한계산에 옮겨짓고 한계사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절을 옮길 때 춘천 근처에서 절구를 떨어뜨려서 그곳을 절구골이라 하고, 또 한계리 근처에서 청동화로를 떨어뜨려 그 곳을 청동벼래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으로 옮긴 뒤 여러 번 불에 타 다시 새 절을 짓고 이름을 붙이려는데, 주지의 꿈에 백발 노인이 나타나서 "청봉(설악산 주봉)에서 이곳까지 못을 세어 보라."하여, 그 말대로 못 수를 세어 백담사(百潭寺)라 했다고 한다. 백담사는 1872년지방지도에서 그 지명을 찾아 볼 수 있다.

광여도에는 설악산 위쪽에 심원사(深源寺)를 볼 수 있는데, 이는 1783(정조 7)부터 백담사로 불리게 되었다.

지금은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의 말사이다.

647(진덕여왕 1) 자장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690(신문왕 10)에 불타버려 719(성덕왕 18)에 재건하였는데, 백담사사적기에 이때의 중건과 관련된 전설이 수록되어 있다.

785(원성왕 1)에 다시 불탔으며, 790년에 한계사터 아래 30리 지점으로 옮겨서 중건하고 절 이름을 운흥사라고 하였다.

그러나 984(성종 3)에 다시 불타버려 운흥사지 북쪽 60리쯤 되는 곳으로 이건하고 987년 심원사로 개명하였다.

이때부터 조선 초기까지 전승되다가 14324번째 화재로 다시 폐허가 되었다.

그뒤 2년 만에 심원사지 아래 30리쯤 되는 곳에 법당과 요사채를 세우고 선구사라 하였으나 1443년에 불타버렸고, 1447년 옛 터의 서쪽 1리쯤 되는 곳에 다시 절을 세워 영축사라 하였다.

그러나 14556번째 화재로 불에 타고 이듬해 옛 절터의 상류 20리 지점으로 옮겨 중건하여 백담사라 하였다.

1772(영조 51) 다시 불타버리자 1775년 최붕, 태현, 태수 등이 초암을 짓고 6년 동안 머물면서 법당과 향각 등의 건물을 중건하고 심원사라 하였다가 1783(정조 7)에 절 이름을 다시 백담사로 바꾸었다.

근대에 이르러 한용운이 머물면서 불교유신론, 십현담주해, 님의 침묵을 집필하였다.

6·25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1957년에 재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중심 법당인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산령각, 화엄실, 법화실, 정문, 요사채 등이 있으며, 뜰에는 삼층석탑 1기가 있고 옛 문화재는 남아 있지 않다. 현존하는 부속암자로는 봉정암, 오세암, 원명암 등이 있다.

백담사는 내설악에 있는 대표적인 절로 가야동 계곡과 구곡담을 흘러온 맑은 물이 합쳐지는 백담계곡 위에 있어 내설악을 오르는 길잡이가 되고 있다.

자장율사의 유물소동일좌와 인조 때 설정대사에게 하양한 칠층소형옥탑 등이 있으며, 암자로는 영시암, 오세암, 봉정암이 있다.

그 밖에 백담사는 만해 한용운(18791944)이 머리를 깍고 수도한 곳으로 유명하다.

만해 스님은 민족와 국민을 위해 그곳에서 민족의 얼을 되살리는 산고의 고통을 겪으면서 집필을 하였다면, 전두환 전대통령 부부는 이곳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 참회를 하였던 장소로 유명하다.

수년전에 왔을 때는 전대통령 내외가 기거했다는 요사채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새로이 단장하여 당시의 회상을 아믈하게 하여 지나가는 스님에게 물으니 자기도 이곳에 왔을 때는 이미 정리가 된 뒤여서 알 수 없다고 하여 아쉬움을 간직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