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Contact Us
    자유게시판
    종회활동
    동영상자료
    사진 자료
    자 료 실
방문자
735
303
3,628
725,117
 
>> > 게시판 > 사진자료  
 
작성일 : 22-08-06 04:06
조손 창덕궁 비원(秘苑) 나드리
 글쓴이 : 김관동
조회 : 49  

조손 창덕궁 비원(秘苑) 나드리

2022. 8. 3.(수요일)

 

어제 하루 종일 장마비가 오더니 오늘 아침 날이 개어 명년이를 데리고 창덕궁을 찾아갔다.

창덕궁 가는 도중에 명년이에게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왕준이 친구가 가리켜 준 조선왕조 26대왕을 아느냐고 명년이에게 물으니 모른다고 하였다.

그래서 필기도구를 주면서 암기할 것을 약속하고 창덕궁에 도착했으나 차가 창경궁 쪽으로 유도하여 최근에 개통한 종묘길의 터널을 지나 창경궁에 차를 파킹하려고 하였지만 자리가 없어 유턴하여 다시 창덕궁 옆 주차장으로 차를 몰았다.

그리고 창덕궁주차장에 도착하였으나 역시 자리가 없어 경비원에게 문의하니 경복궁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라고 하여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창덕궁을 찾아갔다.

창덕궁 안은 방학철이어서 그런지 어린이를 비롯하여 외국인들이 많이 관람을 하고 있었다.

창덕궁은 조선 제3대 태종5(1405) 경복궁의 이궁으로 지은 궁궐이다.

경복궁의 동쪽에 위치한다 하여 이웃한 창경궁과 더불어 동궐이라 불렀다.

임진왜란으로 모든 궁궐이 불에 타자 광해군 때에 다시 짓고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하기까지 정궁 역할을 하였다.

조선의 궁궐 중 가장 오랫동안 임금들이 거처했던 궁궐이 바로 이곳이다.

인정전을 돌아보고 낙선재 앞에 있는 화장실을 들러 다음으로 찾아간 곳이 흔히 세간에 말하고 있는 비원이었다.

창덕궁은 궁궐로서보다는 비원’(秘苑)으로 일반인들에게 익숙한 곳이다.

비원이란 창덕궁과 창경궁에 딸린 북쪽의 정원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전통적으로 사용해온 용어는 아니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을 주로 후원(後苑)이라 불렀고, 때로는 내원(內苑), 상림원(上林苑), 금원(禁苑)으로 불렀다.

비원이란 말은 1908년부터, 그러니까 일제강점기부터 유포돼 해방 뒤에도 별 반성 없이 최근까지 통용되고 있는 용어일 뿐이다.

오후 3시 문화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부용정을 비롯하여 영화당, 춘장대와 불로문을 지나 애련지 일대를 돌아보고 연경당을 지나 왼편으로 올라가 작은 고개를 하나 넘어 폄우사(砭愚榭), 태일문, 선향재, 장락문을 나와 부용정위에서 주합루의 전경을 관망하고 망춘문(朢春門)을 거쳐 희우루, 집희(緝熙), 그리고 내의원이었던 조화어약(調和御藥)을 지나 희정당과 선정문을 나와 상서원과 호위청을 마지막으로 돌아보고 창덕궁 관람을 마치었다.

그리고 경복궁 주차장에서 차를 가지고 나오는데 주차비가 무려 12.000원이 나와 실소를 금하지 못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