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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8-28 02:11
강화 교동 박두성 생가
 글쓴이 : 김관동
조회 : 27  

강화 교동 박두성 생가

2022. 8. 24.(수요일)

 

어제 저녁 강화도 읍내에 있는 남문 옆 보신탕집에서 저녁을 먹고 바로 옆에 에 있는 서울장 여관에서 짐을 풀고 잠에 들어 아침에 기상하였다.

아침 7시가 다 되어서 현장 소장인 김재환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전 작업을 하려 했는데 돌발사고가 생겨 부득이 오전 일을 할 수 없으니 점심때 만날 장소를 알려 드릴데니 여관에서 더 쉬었다가 나오라는 통보전화였다.

여관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간단하게 조반을 마치고 8시가 조금 넘어 여관을 나와 교동교를 건너 인천직할시 강화군 교동면 상용리 516에 있는 우리나라 점자 창시자인 송암 박두성 선생의 생가를 찾아 나섰다.

이곳 생가는 작년 20211122일 개관한 작고 아담한 생가였다.

교동도를 막 넘어 오른편길을 따라 아스라한 농로길을 헤치고 찾아갔다.

이른 아침인데 몇 대의 차가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고 한 중년객이 마당의 풀을 뽑고 있어 의아심을 자아내게 하였다.

선생의 본관은 무안(務安)이고, 호는 송암(松庵)이며, 인천광역시 이곳 강화군교동도 출신으로 고종 광무 10(1906)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어의동보통학교(於義洞普通學校) 교사로 있다가 일제 대정 2(1913) 제생원 맹아부(濟生院盲啞部: 서울盲學校의 전신) 교사로 취임하여, 이때부터 맹인교육에 전념하기 시작하였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일어 점자로만 교육을 해야 하는 것에 불만을 가져오다가 일제 대정 9(1920)부터 한글 점자 연구에 착수하였다.

일제 대정 12(1923) 1월 비밀리에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를 조직하는 등 7년간의 연구를 거쳐 일제 소화 1(1926) 이른바 훈맹정음(訓盲正音)’이라 불리는 한글 점자를 완성하였다.

사람의 몸이 10냥이면 눈이 아홉냥이라는 속담이 있듯이 눈이 가려진 맹인들에게 문자를 알려 준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겠는가.

지금은 비록 한가한 농로속에 세워진 선생의 생가가 문자의 빛을 얻은 장애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폭은한 안식의 장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비록 늦게 문을 연 생가지가 교동교의 개통과 함께 쉬게 찾아 볼 수 있는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을 가르키는 교육장이 되길 바라며 생가를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