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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11-15 16:44
7세조 전농정 휘 득우(得雨) 묘소
 글쓴이 : 김관동
조회 : 32  

7세조 전농정 휘 득우(得雨) 묘소

2022. 11. 2.(수요일)

 

소산에 있는 장령공 산소를 내려와 청원루 앞에 세워 두었던 버스를 향해 오다가 일부는 장령공 형제분들이 모친 예천권씨를 위해 세워 드렸다는 삼구정과 솟대공원을 경유하여 청음시비 앞으로 와 버스에 승차하여 전농정 휘 득우 선조의 산소를 찾아 산소 입구에 차를 세우고 도보로 한참을 걸어 전농정 산소에 당도하였다.

공의 현조는 호장공(戶長公) 여기(呂基)이고, 고조는 정위공[(正位公) 호장정위 남수(南秀)]이며, 증조는 동정공[(同正公) 승사랑위위주부동정(升仕郞衛尉注簿同正) 봉익대부 판도판서 희()]이니, 할아버지는 동정공[(同正公) 승사랑 위위주부동정 자()]이요, 아버지는 사치사공[(事致仕公) 정의대부 판예빈시사치사 근중(斤重)]과 어머니 함창군부인 함창김씨의 3남 중 장남으로 참봉 언적(彦迪)과 언양(彦陽)현감 지철(之哲)의 형이다.

안동김씨의 세계(世系)가 전농정공(典農正公) 이전의 기록은 무엇 때문에 그러했는지 알 수 없으나 정확하게 전하지 못 하였고, 다만 임진왜난 때 타다 남은 문적(文蹟)이 환지(還紙)로 안동부에 들어갔다는 기록이 족보에 기록 되어 있다.

경향각파에 또 선계(先系)가 공수부정공(公須副正公) 위에 1~2대의 기록이 있었으나 세서(世序)가 서로 맞지 않았고, 풍산현 지곡촌 인가(人家)=(삼익(三益)의 사위 정급(鄭伋)의 후손)에서 공수부정공 아래 여섯 대의 안팎기록을 찾았어도 그 위에 기록이 없어 태사공 까지 이르지 못하였다.

그 윗대에 봉영(奉塋)의 기록이 없어 묘소도 실전(失傳)되었으나, 다행히 세계(世系)는 전농정공부터 묘소가 현존하고 조선왕조실록에 한 건의 기록이 실려 있으므로 이에 등재(登載) 한다.

태종 11(1411) 신묘 1215慣習都鑑(관습도감)으로 하여금 雅樂(아악)을 다시 정리하게 할 것을 예조에서 상언(上言)하다.

아악(雅樂)을 정()하였다.

예조에서 상언하였다.

전조(前朝) 광왕(光王)이 사신을 보내어 당()나라 악기와 악공을 청하여 그 자손의 대대로 그 업을 지키게 하였는데, 충렬왕조(忠烈王朝)에 이르러서는 김여영(金呂英)이 맡았고, 충숙왕조(忠肅王朝)에는 그 손자 김득우(金得雨)가 맡았습니다.“라고.

또 송()나라 악서를 상고하면,

원풍(元豐) 年刊(연간)에 고려가 악공을 구하여 가르쳤다.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동방의악()이 실상은 중국에서 나온 것인데, 유전(流傳)한 지 대가 오래 되어 혹은 와오(訛誤)된 것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원컨대, 관습도감(慣習都監)과 함께 자세히 살펴서 그 예전 악보를 찾아 당송의 남은 음()을 좇아서 성조(盛朝)의 정악(正樂)을 정()하소서.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중현대부(中顯大夫) 전농정(典農正)을 역임 하였다.

졸년월일은 미상이다.

배위는 풍산군부인은 풍산유씨로 생몰은 미상이다. 아버지는 서운관(書雲觀) () 치사(致仕) 개구(開舊) ()이고, 할아버지는 창평현령 난옥(蘭玉)이며, 증조는 은사(恩賜) () 제백(第伯)이니, 외조는 흥멸위(興滅尉) 보승(保勝) 산원(散員) 임송연(林松衍)으로 본관은 포주(浦州) = 구호(舊號)는 예천이다.

슬하에 12녀를 두니, 1남은 합문봉례(闔門奉禮) ()이고, 1녀는 영의정 권진(權軫)으로 안동인이고, 2녀는 도사 손인유(孫仁裕)로 일직인이다.

공의 묘소는 경북 안동시 부서(府西) 30리 풍산 북소에 있고, 묘표는 후손 수증(壽增)이 개수(改竪)하여 찬하고 썼으며, 배위 묘소는 서(西) 선수동 북() 오례산 자좌오향(子坐午向) : 정남향)에 부군 묘와 십리도 떨어져 있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 있으며, 묘표는 후손 수증이 개수하여 찬하고 역시 썼다.

묘소 앞에서 간단하게 제물을 진설한 후손중 가장 학열이 높은 문정공파의 선규(銑圭) 대부가 무축 단배로 헌주를 하고 일행은 합동으로 성묘를 하였다.

참반했던 부일씨가 산 넘어에 배향되어 계신 풍산유씨 할머니에 대하여 설명을 해 주어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

내려오던 길 입구에 전농정 재실이 아직도 건재하여 한 시대를 구가 했던 선조들의 위업을 새삼 뻐저리게 느끼게 하는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