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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12-17 08:22
안동 태사묘(太師廟)
 글쓴이 : 김관동
조회 : 28  

안동 태사묘(太師廟)

2022. 11. 3.(목요일)

 

안동파크호텔에서 잠을 자고 7시에 기상하여 어제 저녁을 먹었던 태형식당으로 가 안동의 명물인 간고등어를 곁드린 식단으로 조반을 마치고 안동시 북문동에 자리잡고 있는 태사묘를 찾아갔다.

수년전에 집사람과 함께 손자들을 데리고 23일 안동도산서원을 비롯하여 명승지를 돌아보고 태장에 있는 이상루에서 하루밤을 유하고 와서 참배하였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경모루(敬慕樓) 앞을 공원화하기 위해 잡다했던 집들을 헐고 한창 공사 중이어서 완공이 되면 태사묘가 더욱 멋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태사묘는 고려의 개국공신인 성주 휘 선평(宣平(901~?), 판관 권행(權幸), 장정필(張貞弼) 3분 태사(太師)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930년 태조가 안동에서 견훤(甄萱)을 토벌할 때(고창전투) 세운 공로로, 성주인 휘 선평은 대광(大匡), 권행과 장정필은 대상(大相)이란 벼슬을 받았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 성종 2(983)에 처음으로 3명의 제사를 안동부사가 거행하였다고 한다.

그 후 권태사의 위패가 중앙에 있고 김태사의 위패가 동쪽에 있어 안동권씨들이 자기시조가 주벽이라고 항상 주장함으로 휴암공파의 도정공 휘 수일(壽一 : 1623~1689) 선조께서 숙종대왕에게 상소하여 비답을 받았다는 숙종실록이 있다

숙종 8(1682) 임술 416일 안동부 태사묘에 모신삼공신(三功臣)의 위차(位次)에 대한 시정을 건의하는 [김태사는 동쪽에, 권태사는 가운데, 장태사는 서쪽] 상소를 부호군인 공과 첨지 권열(權說)이 각각 상소하여 위차를 정하여 주기를 청하였다.

조정에서는 퇴계 이황(李滉)의 기문(記文)과 고려사를 고증하여 태사 선평(宣平)을 상좌로 바꾸라는 어명을 예조를 통해 하달 받으니 실로 900여년 만에 확실한 위차를 시정하여 이를 받아 냈다

현 위치의 묘우는 조선 중종 37(1542)에 세운 것인데, 한국전쟁 때 불에 타 1960년대에 다시 세운 것이다.

묘우 안에 있는 보물각에는 붉은잔, 비단, , 가죽신, 부채 등 보물 제451호로 지정된 삼태사의 유물 22점이 보존되어 있다.

그리고 묘우 안에 두동의 관리실이 있으니 동재에는 안동김씨 참제자실이 있고 서재에는 안동권씨와 안동장씨의 참제자실이 함께 있어 삼성(三姓)이 돌아가며 태사묘를 운용하고 있었다.

마침 안동의 일가분이 당번이 되어 아침 일찍 나오시어 묘우를 열어주시어 처음으로 삼태사의 위패 앞에서 참배를 올리는 효도를 하게 되어 가슴이 뿌듯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