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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12-17 08:25
8세조 봉예랑공 휘 혁(革) 묘소
 글쓴이 : 김관동
조회 : 57  

8세조 봉예랑공 휘 혁() 묘소

2022. 11. 3.(목요일)

 

태장 시조 묘단의 시향을 마치고 참봉파의 회장 원동씨가 버스에 합승을하여 귀경길에 마지막으로 봉예랑공 산소를 찾아갔다.

버스는 큰길가에서 일행을 내려주고 다른 곳에서 대기를 하게하고 언덕으로 되어 있는 산소길을 오르는데 무척 힘이 들었다.

마침 원동회장이 바로 직계후손이어서 산소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있어 유익했다.

특히 봉례랑공 바로 조하에 손자인 생원공 휘 용려(用礪)공과 그 밑에 참봉공 휘 시좌(時佐)공의 묘가 있으며 바로 밑에 아드님이신 훈도공 휘 계()의 산소가 삼대를 이어 묘소가 있으며 산소 아래 옆으로 사당이 있다.

그리고 산소 입구에 시묘정(侍墓井)이라는 우물이 있어 이 산소가 명당이라는 것을 재인하게 하였다.

공의 현조는 정위공[(正位公) 호장정위 남수(南秀)]이고, 고조는 동정공[(同正公) 승사랑위위주부동정(升仕郞衛尉注簿同正) 봉익대부 판도판서 희()]이며, 증조는 동정공[(同正公) 승사랑 위위주부동정 자()]이니, 할아버지는 사치사공[(事致仕公) 정의대부 판예빈시사치사 근중(斤重)]이요, 아버지는 전농정공[(典農正公) 중현대부 전농정 득우(得雨)]와 어머니 군부인 풍산유씨의 12녀 중 외아드님이시다.

고려조에 문과에 입격하여 조선조 영의정을 역임한 권진(權軫)과 도사를 지낸 손인유(孫仁裕)는 남매지간이다.

통사랑(通士郞) 합문봉례(閤門奉禮 = 3품직)을 지내시었다.

따라서 족보상 봉례랑공(奉禮郞公)이라 일컽는다.

고려사절요에 의하면 고려조 공민왕 19(1370)에 정몽주(鄭夢周) · 이색(李穡) · 이인복(李仁復)과 더불어 신돈(辛旽)을 소핵(疏劾)하고 익년(翌年)에 신돈이 복주(伏誅)되었다.”라고 표기한 것으로 보아 품계가 소핵자들과 같은 품계가 아니었나 사료된다.

졸년월일은 미상이다.

배위는 안동권씨로 생몰은 미상이다. 아버지는 좌우위(左右衛)의 보승랑장(保勝郞將) 겸 감찰규정(監察糾正)인 희정(希正)이고, 할아버지는 별장(別將)인 용일(用一)이며, 증조는 중문지후(中門祗侯) ()이니, 외조는 판도총랑(版圖摠郞) 김가기(金可器)로 본관은 언양이다.

슬하에 3남을 두니, 1남은 비안현감 삼근(三近)이고, 2남은 어담(漁潭) 삼익(三益)이며, 3남은 선공감 삼우(三友)이다.

묘소의 주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상리쪽 시묘동(侍墓洞) 자좌오향(子坐午向) : 정남향)에 쌍분(雙墳)이며 배위가 왼편이다.

후손인 참판 수증(壽增)이 스스로 글을 짓고 개수한 비석이 있었으나 훼절(毁折)되어 다시 후손인 판서 학순(學淳)이 안동부사 때 그대로 하여 돌을 개수(改竪)하였다.

헌주는 일행을 인솔하느라고 고생한 사무장 권진대부가 무축단배로 잔을 올리고 일행이 합동으로 성묘를 하였다.

일박 2일 동안 일행을 인솔하신 조한(鵰漢)회장님과 권진 사무장께 감사드리며 특히 망백의 연세에 맨 앞장서시며 노익장을 발휘하신 홍진 고문님과 함께 동승했던 수일 전 대종중사무총장께도 감사를 드리며 안동 시향기를 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