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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12-17 08:27
임인(2022) 강화 충렬사 시향
 글쓴이 : 김관동
조회 : 40  

임인(2022) 강화 충렬사 시향

2022. 11. 10.(목요일)

 

오전 11시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 충렬사로 232에 있는 충렬사에서 386주기 추계 시향을 올리었다.

이른 아침 5시에 기상하여 조반을 마치고 강화군 내가면 오상리 534 강문석 지장전주 이설공사 현장감리에 임하였다.

오전 830분 화성전기 김재환 소장을 비롯하여 11명이 작업에 임하였는데 무정전 작업을 위하여 바이바스케이블을 설치한 후 공사용개폐기 부설을 마치고 연결하여 투입하였으나 B상이 결상되어 부득이 작업을 중단하고 다음으로 작업연기를 하게 되었다.

오전 10시 반경에 서윤공파 사무장 권진대부에게 전화를 하니 충렬사로 일가분들이 모이고 있다고 하였다.

현장원들과 헤어져 20분 거리에 있는 충렬사로 향해 출발하였다.

충렬사에 도착하니 승한 대종중 회장을 비롯하여 성한 사무총장, 수일 전총장, 서윤공문중에서 조한회장님과 용현 감사가 참례하여 도유사에게 시도를 한 뒤 제관 분정을 하였다.

우리문중에서 주벽의 초헌관에 승한 회장님이 배정되었고 봉패에 권진, 용현, 봉작에 수일씨가 각각 분정 되어 29위 충신에 대한 향사를 올리었다.

이곳 충렬사는 199532일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다.

문충공 선원(仙源) 휘 상용(尙容) 선조를 비롯한 병자호란·신미양요 때의 충신 28명의 위패를 봉안한 곳이다.

병자호란 때 강화에서 자결한 벽진이씨인 공조판서 이상길(李尙吉)의 위패도 이곳에 모셔져 있다.

1641(인조 19)에 건립하여 현충사(顯忠祠)라 부르다가 1658(효종 9)에 강화유수 허휘(許徽)가 충렬사로 이름을 바꿨다.

이곳은 문충공 휘 상용선조께서 사시었던 강화군 선원면 선행리(仙杏里)에 위치해 있으며 1658(효종 9)에 사액되었다.

건립 때는 6인을 제향했으나, 이들과 함께 순절하고도 입향(入享)되지 못한 인물의 후손들의 호소로 1657년에 훈련정 황선신(黃善身), 훈련첨정 강흥업(康興業), 1658년에는 금부도사 권순장(權順長), 생원 김익겸(金益謙), 필선 윤전(尹烇), 1728(영조 4)에 좌승지 홍명형(洪命亨), 1787(정조 11)에 광흥수(廣興守) 이돈오(李惇五)를 각각 추향하였다.

문충공 휘 상용선조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1636(인조 14) 병자호란 때 왕세자비와 왕자들을 모시고 강화로 가셨다가 강화성이 함락되자 손자 수전과 함께 강화산성 남문루에 올라 화약에 불을 질러 자결하신 곳이다.

1700년에 후손 몽와 휘 창집선조께서 비석을 세웠으나 너무 낡아 1834년 후손 대산 휘 매순선조께서 강화읍 고려궁지 입구에 새 비를 세웠다. 일설에 의하면 강화 남문에서 자폭하셨을 때 문충공의 신이 4km 거리의 선행리에 떨어져 사후 4년만에 그곳에 충렬사를 세웠다는 전설이 전해지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