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의 수돗물값

 로마시대의 유적지를 돌아보면서 가장 감탄한 부분은 치수(治水) 능력이었다.

 고지대의 언덕까지 물을 끌어올리는 상수도를 설치하여 맑은 물을 공급하는 공학적인 설계 능력이었다.

 맑고 깨끗한 먹을 물이 없으면 인구가 밀집한 도시는 성립될 수 없다.

 인구 밀집 도시가 있어야만 제국의 파워가 나온다.

 로마의 고속도로인 '아피아 가도(街道)'도 훌륭했지만 돌로 만든 상하수도 시설이 로마문명이 지녔던 치수 능력을 한눈에 보여주었다.

 위대한 점이다.

 치수의 범위에는 홍수 조절도 있지만 더 근원적인 부분은 상수도 시설이라고 생각한다.

 뉴욕 맨해튼에 처음 갔을 때 수돗물이 맑고 깨끗하다는 데에 놀랐다.

 정수기 없이도 바로 먹을 수 있었다.

 더 놀랐던 부분은 수돗물값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공짜였다.

 나는 호텔에 주로 머물렀기 때문에 수돗물 값에 무심할 수밖에 없었지만, 맨해튼의 월세방에서 장기 체류를 하던 친구로부터 맨해튼의 수돗물값이 공짜라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집주인이 매달 가스비, 전기료는 받아가지만 수도료는 청구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왜 안 받느냐?"

 "공짜다.

  록펠러가 맨해튼의 수도요금을 미리 냈기 때문에 아마 200년은 공짜일 것이다"는 집주인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맨해튼만 무료이지 맨해튼 밖의 외곽 지대는 물값을 받는다.

 외곽의 물값은 싸지 않다.

 맨해튼 월세방에 체류하던 그 친구 이야기로는 손으로 매일 수도꼭지를 잡아 틀 때마다 록펠러가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록펠러 신세를 지고 있구나!' 난생처음으로 부자에 대한 존경심이 생겼음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록펠러는 어떻게 뉴욕 시민들에게 하필 수돗물을 공짜로 제공할 생각을 하였을까?

 스스로 한 생각일까, 아니면 참모의 조언을 받았던 것일까?

 대중에게 물을 준다는 것은 종교적인 발상이자, 동양의 음양오행 철학에 비추어 봐도 그 의미가 아주 깊다.

 음양오행에서 물은 숫자로 1에 해당한다.

 모든 시작을 의미한다.

 상선약수(上善若水)요, 장풍득수(藏風得水)이다.

 득수(得水)에서의 물은 재물을 상징한다.

 록펠러는 뉴욕 시민들에게 돈을 매일 나누어 준 셈이다.

 록펠러는 진즉에 죽어 흙이 되었지만 지금도 살아 있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주고 있는 것이다.

 혹시 록펠러가 어떤 도사 말을 듣고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수도배관이 부식되어 녹슨 물이 나온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맨해튼의 록펠러 수돗물 생각이 났다.

 한국에는 부자가 없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