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부자의 교육 전통과

                상산고·민사고

 해방 이후에 책을 써서 가장 돈을 많이 번 인물은 아마도 홍성대(1937~)가 아닌가 싶다.

 '수학의 정석' 저자이다.

 바둑에만 정석이 있는 줄 알았던 한국 사람들에게 수학에도 정석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인물이기도 하다.

 "영어의 정석은 왜 안 쓰셨습니까?"

 "내 전공만 써야지요.

  영어는 전공 아니니까요".

 10년 전쯤 남성고 총동문회에 강연 갔다가 헤드 테이블에서 동석한 홍성대 상산고 이사장과 필자가 나누었던 이야기다.

 "관상이 사자상(相)인데, 정치를 한번 해보시지 그랬습니까?"

 "소석(素石·이철승)이 정치는 하지 말라고 했어요.

  교육 사업에 투자하라고 했지."

 홍성대는 정읍이 고향이지만 익산의 남성고(南星高)를 다녔다.

 남성고도 사연이 있는 학교이다.

 전주의 '백부자집[學忍堂]' 후손인 백남신(白南信·1858 ~1920)의 재산으로 만든 학교이다.

 1894년 동학혁명으로 전주성이 동학군에 함락되었고 전주는 양반, 상놈의 차별이 가장 먼저 없어진 도시가 되었다.

 이 혼란 상황에서 중인 출신 부자인 백남신이 양쪽의 중재를 하지 않았나 싶다.

 고종은 백남신을 신뢰하였다.

 그래서 이름을

 '남쪽에 믿을 사람은 너다'라는 의미로

 '남신(南信)'

 이라는 이름을 특별히 하사하였다.

 백남신은 왜정 때 익산에서 쌀 농장을 경영하여 큰돈을 벌었고, 1946년에 그 며느리가 당대 일류 교사들을 초빙하여 남성고를 세운 것이다.

 일제강점기 호남의 부자들은 학교 사업에 투자하는 것이 하나의 흐름이었다.

 대표적으로 인촌 김성수의 1932년 고려대학교 인수이다.

 이것은 인촌의 단독 드리블이 아니고 호남의 돈 있는 여러 지주의 공동 투자가 있었다.

 고려대 투자는 호남 부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순천에서는 우석 김종익(1886~1937)이 있었다.

 자신의 딸이 어려서 죽자 거액을 기부하여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를 세웠다.

 고려대 의대의 전신이다.

 인촌과 쌍벽을 이루는 호남 부자였던 무송(撫松) 현준호(玄俊鎬·1889~1950).

 현대 현정은 회장의 조부이다.

 민족자본을 지키기 위해 호남은행을 세웠지만 총독부에 찍 혀서 강제 해체당했다.

 삼성 홍라희의 외조부 김신석이 무송의 오른팔로 스카우트되어 일제강점기 호남은행 목포지점장을 하였다.

 전남대는 의대가 가장 먼저 세워진 특이한 학교이다.

 전남의대를 세울 때 그 돈을 현준호가 댔다.

 '민족사관고등학교'를 세운 파스퇴르 우유 최명재도 전북 김제가 고향이다.

 상산고와 민사고는 호남 부자들의 학원 사업 전통과 연결되어 있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