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졸무망 (識拙無妄)

 선조 때 박숭원(朴崇元·1532~1593)이 강원도 관찰사가 되었다.

 대간(臺諫)들이 그가 오활(迂闊)하고 졸렬하다 하여 교체해야 한다며 탄핵했다.

 임금의 대답이 이랬다.

  한번은 연석(筵席)에서 대신들의 능하고 못하고에 대해 논하였다.

 임금이 말했다.

 "신식(申湜·1551~1623)은 졸렬하고 허성(許筬·1548~1612)은 고집스럽다."

 신식은 꾸밀 줄 모르고, 허성은 원칙을 지킨다는 칭찬이었다.

 신식은 임금께서 알아주심에 감격해서 자신의 호를 용졸재(用拙齋)로 지었다.

 졸렬함으로 임금에게 쓰임을 받은 사람이란 의미다.

 최립(崔岦·1539~1612)은 '용졸재기(用拙齋記)'에서

 "巧起於繕飾作弄 畢竟是人僞(교기어선식작롱 필경시인위)  교(巧)는 그럴싸하게 꾸며 장난치는 데서 나오니 마침내 거짓이다.

  而拙雖若起於不足(이졸수약기어부족)  졸(拙)은 비록 부족한 데서 나온 듯해도

  却自不離天機耳(각자부리천기耳)  스스로 천기(天機)를 벗어나지 않는다"

 고 썼다.

 허목(許穆·1595~1682)은 '백졸장설(百拙藏說)'에서 자신에 대해 이렇게 썼다.

 "老人才拙學拙(노인재졸학졸)  노인은 재주가 졸렬하고 학문이 졸렬하다.

  心拙志拙(심졸지졸)  마음이 졸렬하고 뜻이 졸렬하다.

  言拙行拙(언졸행졸)  말이 졸렬하고 행동이 졸렬하다.

  百試而百拙(백시이백졸)  하는 모든 일이 다 졸렬하다.

  故名吾居曰百拙藏(고명오거왈백졸장)  그래서 내 거처를 백졸장(百拙藏)이라고 부른다.

  名不可外求(명부가외구)  이름은 밖에서 구해서는 안 되니,

  出於性者然也(출어성자연야)  성품에서 나오는 것이라 그렇다.

  所以識拙(소이식졸)  이 때문에 졸렬함을 아는 것은

  毋妄動之戒也(무망동지계야)  망녕되이 행동하지 말라는 경계이다."

 송나라 주돈이(周敦頤)는 남들이 자신을 졸렬하다고 말하자 기뻐하며 이런 글을 지었다.

 "(巧者言 拙者默((교자언 졸자묵)  교묘한 자는 말하고 졸렬한 사람은 침 묵한다.

   巧者勞 拙者逸(교자로 졸자일)  교묘한 자는 수고롭지만 졸렬한 자는 편안하다.

  巧者賊 拙者德(교자적 졸자덕)  교묘한 자는 남을 해치나 졸렬한 자는 덕스럽다.

   巧者凶 拙者吉(교자흉 졸자길)  교묘한 자는 흉하나 졸렬한 자는 길하다."

 세상은 너 나 할 것 없이 온통 인정받고 남을 꺾기 위해 교묘해지려고 난리인데, 못났다 졸렬하다는 말을 듣고 오히려 즐거워하고 기뻐한 사람들 얘기다.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