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여울의 물소리
봄은 강물을 따라서 온다는 이치를 알았다.
봄의 정취는 꽃잎 색깔에서도 느끼지만 강물에서도 물씬 풍긴다.
왜 춘강(春江)의 물색은 이리 푸르게 느껴질까.
청자빛으로 보이는 강물의 색깔은 사람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작용을 한다.
봄이야말로
청산리 벽계수(靑山裏 碧溪水)를 따라가며 그 물색을 감상하기에는 최적의 계절이다.
그 청산리 벽계수는 남한강이었다.
'퇴계 선생 마지막 귀향길'을 사전 답사하기 위해 '퇴계클럽' 회원들과 함께 여주 신륵사에서부터 남한강 상류를 60㎞ 정도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남한강물이 신륵사의 바위 정기를 부드럽게 감싸 안고 흐르는 모습이 보인다.
물이 지닌 부드러움과 바위가 지닌 단단함이 어떻게 조우하는지를 관찰해 보는 것도 인생 공부이다.
어떻게 저리 이질적인 기운들이 서로 섞일 수 있는 것일까!
물과 불이 서로를 감싸 안는다.
더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강천섬이 나오고, 다시 강물을 따라 올라가면 고려시대 세곡 창고가 있었던 흥원창(興元倉) 지점이 나온다.
원주를 비롯한 강원도에서 걷은 곡식을 개성으로 운반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창고이다.
200석을 실을 수 있는 평저선(平底船)이 21척이나 배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작은 강물인 섬강의 물과 큰 강물인 남한강의 물이 합류하는 지점이다.
두 개의 강물이 합류하는 지점은 예로부터 감상 포인트였다.
두 가닥의 인심이 저런 방식으로 합해지고 있구나를 느낀다.
원주시 부론면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강물을 따라 걸어가니 아직 훼손되지 않은 조선시대의 강변 풍경이 그대로 존재하고 있었다.
강물 중간 중간마다
여울
탄(灘)
들이 있다.
여울은 그 물소리가 좋다.
강물이 흘러오다가 강바닥의 바위와 자갈을 만나 부딪치면서 내는 특유의 물소리가 있다.
폭포 소리 같이 크지도 않다.
작은 소리지만 가슴에 스며드는 소리이다.
밤에 잠결에 들으면 좋을 소리이다.
왜 나는 이 여울 소리가 이리 좋단 말인가?
여울의 물소리는 먹고산다고 짓눌려 있었던 로맨틱한 감성을 회복시켜 준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