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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9-25 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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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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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관동
 조회 :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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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 형
시인 김준태가 동네 목욕탕엘 갔더니 초등학교 1, 2학년쯤 돼 보이는 아이가 고만고만한 동생을 씻기고 있다.
'키가 큰 여덟 살의 형이란 녀석이/
이마에 피도 안 마른 여섯 살쯤 아우를/
때밀이용 베드 위에 벌러덩 눕혀 놓고서/
엉덩이 어깨 발바닥 배 사타구니 구석까지/
손을 넣어 마치 그의 어미처럼 닦아주고 있었다/
불알 두 쪽도 예쁘게 반짝반짝 닦아주는 것이었다'
(형제).
한 살이 많아도 형은 형, 의젓한 형 몫을 하게 마련이다.
예부터
"형만한 아우 없다"
고 했다.
'장형부모(長兄父母)
형우제공(兄友弟恭)'
이라고 해
맏형은 부모와 같으며,
형은 동생을 아끼고 동생은 형을 공경
하라고 가르쳤다.
그런가 하면 속담에
"갈모 형제라"
했다.
비 올 때 갓 위에 덮어 쓰던 갈모가 위는 뾰족하고 아래는 넓은 것처럼 형보다 아우가 나은 경우를 이른다.
우형현제(愚兄賢弟)도 비슷한 표현일 것 같다.
더 나은 동생을 둔 형, 특히 지존(至尊)의 형으로 삼가며 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축 처진 모양새를 가리켜
"효령대군 북 가죽 같다"
는 말이 있다.
효령은 동생 충녕(세종)이 세자가 되자 절에 파묻혀 가죽이 늘어지도록 북을 두드려댔다.
그렇게 욕심을 비운 효령은 아흔을 넘겨 살며 성종까지 6대에 걸쳐 왕실 최고 어른 '연고존친(年高尊親)'으로 극진한 존경과 대접을 받았다.
그의 조용한 처신이 세종의 치세(治世)를 음으로 도왔던 셈이다.
그제 노건평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재판장이 노씨를
"동생 죽게 만든 못난 형"
이라고 꾸짖었다.
"피고인은 로열패밀리가 됐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엔 관심도 없었다. 사건 알선을 해준 뒤 구전이나 챙기고, 돈 있는 사람에게 돈을 거둬 출마자들에게 나눠주며 봉하대군 노릇을 즐겼다."
재판장은
"추악한 탐욕이 얽히고설켜 지독한 냄새가 난 나머지 검찰이 수사한 것이지,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겨냥한) 권력형 비리를 수사하려고 시작한 게 아니다"
라고 했다.
재판장은 지금 노씨의 처지를 이렇게 비유했다.
"내가 키웠노라고 큰소리쳤던 동생이 자살한 뒤 해가 떨어지면 동네 어귀에서 술을 마시며 신세 한탄을 하는 초라한 시골 늙은이의 외양을 하고 있다."
재판장은 그런 신세로 전락한 노씨의 형량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며 1심 4년 형을 2년6개월로 줄여 선고했다.
재판장 훈계가 15분 넘게 이어지는 동안 노씨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못난 형'의 때늦은 회한이 그의 두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을 것이다.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tjoh@chosun.com
조선일보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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