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와 쥐
사람과 더불어 생활하는 쥐의 해로움은 달리 얘기할 바가 없다.
전염병의 온상이자, 사람의 곡물을 축내는 짐승.
이에 비해 여우는 마냥 해로운 짐승으로 몰리기에는 다소 억울한 면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동서고금에 나오는 여우의 이미지는 대개 어둡다.
구미호(九尾狐)의 전설이 유행한 한국과 중국, 대규모로 들판의 여우를 사냥하는 영국 등 유럽의 전통은 그에 닿아 있다.
심지어는 여우의 출현을 불길한 징조로 여기는 습속도 남아 있다.
의심이 많고 꾀를 내세우는 듯한 양태가 좋게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동양의 고전에서 여우와 쥐가 함께 얘기되는 경우가 있다.
사람이 쌓은 두꺼운 벽 사이를 뚫고 들어가 기생하는 여우, 역시 인공의 건축물에 들어가 그 견고함을 허물어대는 쥐의 얘기다.
이른바 성호사서(城狐社鼠)다.
성은 남의 공격에 대비해 쌓는 구조물이다.
사(社)는 사람의 길흉화복을 관장한다는 토지의 신을 모시는 건물이다.
둘은 이를테면 사람 사회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건조물의 상징이다.
여우와 쥐가 이곳에 기생한다면 건축구조에 흠집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을 처치하기가 마땅치 않다.
성벽을 파헤쳐 여우를 잡자니 그 무너짐을 걱정해야 하고, 연기를 피워 쥐를 몰자니 화재로 인한 건물의 붕괴가 걱정스럽다.
없애야 하는 걸 알면서도 몰아내기 힘든 존재가 결국은 성벽 안의 여우요, 토지신 건물 안의 쥐다.
과거 정권에 빌붙어서 비리를 저지른 여우와 쥐 같은 사람들의 얘기가 요즘 화제다.
투명성을 내걸고 청렴함을 내세웠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근간을 흔드는 도덕적 해이에 해당하는 사건이다.
노 전 대통령의 측근에 그 혈족까지 혐의를 받고 있으니 어디까지 수사가 확대될지 지켜볼 일이다.
비바람에 끄떡 않던 커다란 구조물이 넘어지는 것은 우연으로 보이는 하찮음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천 리의 둑이 개미구멍 때문에 무너진다
(千里之堤, 潰於蟻穴)’
고 하지 않았던가.
이미 지나간 정권의 그늘에 숨어 영화를 누리려 했던 속 검은 자들을 검거했다고 쾌재만 부를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한국의 권력 사회에 늘 숨어드는 새로운 여우와 쥐 같은 존재들을 막는 데 더 힘을 쏟아야 한다. 성벽의 틈새를 다지고, 쥐덫을 치는 일 말이다.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
<scRIPT type=text/javascript>
// 이미지 컴퍼넌트 사이즈 조절
try
{
var oContent = document.getElementById("articleImage");
if(oContent)
{
for(var nIdx=0; nIdx 250)
{
oContent.getElementsByTagName("img")[nIdx].width = 250;
}
}
}
} catch(e){}
</scRIPT>
<IFRAME noResize height=0 marginHeight=0 src="http://article.joins.com/article/findReporterID_2008.asp?reporter=유광종" frameBorder=0 width=0 marginWidth=0 scrolling=no></IFRAME>
중앙일보
조회 : 1,35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