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철학-- 眞者樂火(진자요화) 조용헌
중국의 유서 깊은 도관（道觀）인 백운관（白雲觀）에는 십몇 년 전까지만 하여도 일부러 전기시설을 하지 않고 산다고 들었다.
전깃불이 없으니까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을 잘 수밖에 없다.
자연의 리듬에 맞추어 사는 것이 도교의 이념이다.
나는 백운관을 생각할 때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을 흠모하였다.
어둠은 사람을 쉬게 만들기 때문이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 어디란 말인가？
축령산 자락에 장작으로 불을 때는 가마를 설치해 놓고 도자기를 굽는 희뫼（41）선생은 전깃불이 없는 데서 초막을 짓고 산다.
불편하기 짝이 없지만, 그는 밤이 되면 컴컴한 숲에서 달을 보고, 산 그림자를 바라본다.
별로 돈도 되지 않는 삶이지만, 그는 이 불 없는 숲 속의 생활에 만족해하는 것 같다.
음력 보름이 되면 그는 가마에 장작불을 지핀다.
보름 달빛 아래에서 작업을 하면 독특한 감정이 생긴다고 한다.
대략 30시간 동안 밤낮으로 장작으로 불을 때는데, 엊그제에 그의 작업실인 희뫼공방을 찾아가 보니까 어둡고 적막한 숲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흙으로 만든 가마 속에는 벌겋게 불을 뿜으며 장작들이 타고 있었다.
세 군데의 아궁이마다 각기 불의 성질도 달랐다.
'산화불', '환원불', '중성불'이 그것이다.
산화불은 완전 연소되는 불이다.
산화불 아궁이에서 굽는 도자기는 색깔이 붉거나 노르스름하게 나온다.
환원불은 불완전 연소되는 불이다.
푸르스름한 색깔의 도자기가 이 아궁이에서 나온다.
중성불은 그 중간에 있다.
25시간 넘어가면서부터는 불의 색깔이 변한다.
붉은색에서 형광등 불빛 같은 색깔로 변하기 시작한다.
불빛이 변한다는 것은 가마의 온도가 1200도를 넘어가기 시작한다는 징표이다.
이때부터 도공은 온 정신을 집중해서 불을 바라본다.
가마에서 오랫동안 불을 다뤄 본 희뫼는 '훨훨 타는 불을 계속 바라보다 보면 오르가슴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불은 모든 것을 태워 버린다.
무（無）로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불은 깨끗하다.
불을 바라보면 번뇌가 타 버린다.
마음이 밝아진다.
'지자요수（智者樂水）'라고 했던가！
'진자요화（眞者樂火·진인은 불을 좋아한다）
'도 있다.
조선일보
[이 게시물은 사무차장님에 의해 2008-12-17 10:31:16 사랑방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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