處世列傳(처세열전)           조    용    헌

 사마천(司馬遷)이 쓴 '사기'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열전(列傳)'이다.

 '열전'에는 잘나가다가 망한 이야기, 밑바닥에 있다가 흥하게 된 이야기 등등 인간사의 수많은 드라마가 쓰여 있다.

 '사기열전(史記列傳)'은 인간사의 '처세열전(處世列傳)'인 것이다.

 애매한 상황에서 처세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참고하려면 '사기열전'을 읽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2000년 전 세상에만 처세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열전'은 쓰이고 있다.

 특히 맨주먹으로 기업체를 일으킨 사람이거나, 월급쟁이로 들어가서 대기업체 사장까지 올라간 사람들의 인생 스토리를 듣다 보면 '처세열전'이라는 제목의 책을 한번 써 봐야 되겠다는 의욕이 생긴다.

 얼마 전에 국내 유수 기업체의 Y사장을 만났더니 처세의 고비 한 토막을 이야기해 주었다.

 본부의 간부로 있다가 회장이 바뀌면서 변두리 계열사로 좌천될 때가 고비였다고 한다.

 회장이 그를 좌천시키려고 불렀을 때, Y는 복받치는 감정을 누르고 담담하게 이야기하였다.

 "저를 왜 불렀는지 압니다.

 저더러 그만두라는 것이죠!"

 "그렇게 먼저 말해주면 고맙고!"

 "제가 그만두더라도 회장님, 이 부분하고 저 부분은 후임자가 꼭 정리해 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만두라는 회장 면전에서 삿대질하면서 험한 이야기 하지 않고, 뒷일까지 성실하게 인계하고 회장실을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 Y의 내공이었다.

 보통 사람은 이 대목에서 막말을 하기 쉽다.

 하지만 변두리 계열사 발령을 받고 회사를 그만둘까 하고 고민하고 있을 때 어떤 선배가 충고를 하였다.

 "새마을호 특실에 타고 있다가 일반실로 옮기는 것은 열차 한 칸 차이다.

 여차하면 다시 특실로 올 수 있다.

 하지만 중간에 대구나 대전역에 내려 버리면 다시 그 열차를 올라타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까 기차에서 내리지 말고 타고 있어라!" 이 말을 듣고 Y는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다.

 설움을 참으면서 계열사에 근무하고 있다가 몇 년 후에 다시 본사로 되돌아올 수 있었고, 마침내 사장까지 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가 어찌 Y사장에게만 있겠는가! 대한민국에서 기업을 하는 수많은 사장들에게도 각기 가슴에 품어 놓은 이야기 들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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