孟母(맹모)의 三遷之敎(삼천지교)

 오래 전 초등학교 시절 이화여대 강당에서 열렸던 피아니스트 폴 바두라 스코다의 첫 내한공연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의 연주가 나를 감동시켰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주 여리게 시작하는 베토벤 소나타를 연주하려는 순간, 박자까지 맞춰 은은하게(?) 멀리서 기적소리가 들려 왔기 때문이었다.

 연주자의 자연스럽고 세련된 무대 매너로 다행히 청중 모두 웃으면서 넘길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낭만이 깃든 추억인 것 같다.

 나도 무대에서 실로 아찔한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다.

 베토벤의 작품 중 가장 아름답다고 일컬어지는 협주곡 ‘제4번’의 첫 음을 내는 순간, 객석에서 때아닌 라벨의 ‘볼레로’가 먼저 울려퍼졌던 것이다.

 온갖 신경을 집중하고 있던 연주자는 물론 숨죽이며 기다리던 청중에게도 실로 황당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그 강렬한 멜로디가 꽤나 오래도록 지속되었던 것을 보면, 아마 그 휴대전화 주인은 자신의 창피스러움을 연주의 파괴보다 휠씬 크게 생각하는 이기적인 인물이었음에 틀림없다.

 좋은 관객이 되는 일은 좋은 음악가가 되는 일만큼 중요하다.

 그 둘은 곧 그 사회의 음악적 수준을 반영하는 잣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음악을 공부해서 연주자가 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아 자칫 좋은 관객이 되는 일에 신경을 덜 쓰는 일을 흔히 볼 수 있다.

 모차르트가 자기 아버지에게 쓴 편지를 읽어보면 그가 아버지에게 정신적으로 얼마나 많이 의지했는지 알 수 있다.

 혹독한 훈련으로 베토벤의 음악적 기반을 마련해준 아버지, 따스한 손길로 매만져준 어머니 등 유명한 음악가의 뒤엔 언제나 훌륭한 부모가 계셨고 그들은 항상 치열한 음악 정신을 먼저 심어주었던 것 같다.

 나에게도 자랑스러운 훌륭한 아버지가 계시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곧 수많은 LP판으로 이어진다.

 바이올리니스트의 꿈을 가졌던 부친은 LP레코드 수집광이었고, 덕분에 집에는 언제나 클래식 음악이 흘러 항상 음악 가까이에서 느끼고 생각하게 만드셨다.

 그 시절 나의 음악감상은 음악의 본질인 ‘소리’의 깊이와 색채를 알게 해 주었고, 소리는 바로 ‘자아 발견’과 ‘자기 성찰’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워낙 음악적 재능이 많은 민족이라 우리나라에는 일찍부터 세계에 이름을 날리는 어린 음악가의 뒤를 잇겠노라 애쓰는 모녀와 부자들이 꽤 많지만, 때로는 그들의 ‘튀는’ 행동으로 주변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연습실에 가둬두고 밖에서 감시하는 어머니 때문에 무릎 위에 만화책을 펴놓고 손가락만 돌리고 앉았었다는 아이, 며칠 밤을 새우게 하면서 준비한 콩쿠르의 결과가 좋지 못하다고 공공장소에서 갑자기 폭군으로 변하는 부모, 선생을 콩쿠르 입상의 도구쯤으로 생각해 온갖 감언이설로 레슨을 청하다 어느 날 느닷없이 안면 몰수하는 어머니, 다른 아이의 연주에는 신랄한 악평만 일삼는 평론가로 변신하는 부모….

 다들 연주자란 많은 사람을 앉혀 놓고 화려한 의상을 차려입은 채 무대에 올라 온갖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마음껏 자신을 뽐내고 그들의 입신양명으로 부모 자신이 드러나는, 새로운 시대의 효도요 출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인 것 같다.

 그러나 음악이란 아름다움의 창조요, 음악가란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에 앞장서야 하는 사람이라 하고 싶다.

 좋은 음악가의 부모란 자아를 발견해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풍부한 느낌과 생각을 만들어 주는 거울이어야 한다.

 좋은 음악가를 만들고 싶은 부모는 오늘부터라도 아름다운 음악을 늘 가깝게 울려퍼지게 할 것이며, 자녀와 함께 좋은 음악회에 가 아름다운 음악의 세계에 깊이 빠져 위대한 음악과 충분한 교감을 나누고 마음껏 박수치고 칭찬하는 좋은 관객이 되어야 한다.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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