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풍제월 (光風霽月)       

 올해 초 교수신문은 340명의 응답자 중 32%의 추천을 받은 '광풍제월(光風霽月)'을 금년의 사자성어로 선택했다고 한다.

 이 말은 송사(宋史)의 열전(列傳) 중 주돈이(周敦)전에 나온 것으로 그의 인품이 아주 고매하고 가슴에 품은 뜻은 크고 시원하여 마치 비 갠 후의 훈훈한 바람과 깨끗한 달 같음을 형용한 것이다.

 송대 이후 중국의 시인들은 이 말을 '광제(光霽)'로 줄여서 한여름의 뜨거운 햇빛을 광제가 없다면 어떻게 견디겠느냐고 노래한 일이 많았고, 조선시대의 선비들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인자함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많이 썼다고 한다.

 아버지가 늘 인자하지는 않았겠지만 자식은 선친의 좋은 기억만을 간직하는 것이다.

 교수신문이 이 말을 꺼내든 것은 아마도 지난 5년의 참여정부가 바람 불고 비 오는 세월이었다면 새로 들어서는 정부는 꽃 피고 새 우는 화창한 세월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간접적으로 표시한 것이리라.

  이것을 잘 아는 듯 인수위는 활발하게 여러 의견과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지난 정부들도 시작할 때에는 세상을 크게 바꾸어 놓을 듯했으나 끝날 때에는 세상에 대한 그들의 생각만 크게 바뀌었음을 우리는 거듭 보아 왔다.

 당선자 자신도 그것을 의식한 듯
 "5년 세월이 잠깐이라는 것을 안다.
  앞으로 정쟁(政爭)은 지양하고 오로지 국익만 생각하겠다"는 발언을 했다.

 지나간 정부들은 왜 용두사미가 되었을까.

  대체로 보아 네가 실패한 곳에서 나는 성공할 수 있다는 오만한 마음을 가졌거나,

 나는 적어도 너보다는 거룩하다는 식의 우월감을 느꼈거나,

 나는 아버지 없이 빈손 쥔 채 거친 들판을 달려왔다는 고아 의식을 떨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의 마음은 이처럼 선명하게 나와 너를 구분하기 좋아한다.

 그래서 이런 얘기가 있다.

 젊은 날의 달마선사가 심산유곡의 어느 산사에 들렀는데 두 노인이 밤이나 낮이나 바둑을 두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반면의 형세에 따라 흑이 유리하면 흑 잡은 노인이, 백이 유리하면 백 잡은 노인이 더 크게 보였다.

 그 후 달마가 면벽 9년에 깨달음을 얻고서 다시 그 사찰에 들르니 두 노인은 여전히 바둑을 두고 있었으나 홀연 두 사람이 합쳐져 한 사람이 되었다.

 이것은 흑백의 시비를 초월해야 비로소 반면의 대국을 볼 수 있다는 화두이다.

 이 깨달음대로라면 바람 부는 3월과 비 오는 4월이 꽃 피는 5월을 만들고, 풍찬노숙의 세월이 있었기에 광풍제월의 세상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제의 잘못이 있었기에 오늘의 발전이 있는 것이다.

 반대로 조금만 방심하면 지금의 이 좋은 순간도 곧 먹구름의 순간으로 바뀌게 된다.

 새로 시작하는 정부는 이러한 깨달음 위에서 나아가야 한다.

 구체적인 사항을 말해보자면 친기업 정책을 펼친다면서 소외된 사람, 가난한 사람, 일용직 노동자 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범위를 좁혀 출판 문화계를 살펴본다면 당선자가 서가에서 뽑아 든 어떤 책이 어느 날 갑자기 베스트셀러가 되는 그런 단발성 이벤트보다는 전반적인 문화 활동에 대하여 지속적이고 애정 어린 후원을 베풀어야 한다.

 사상적 혈연관계는 다를지 몰라도 시간상의 전후 관계를 두고 본다면 앞서 간 정부들은 뒤에 들어서는 정부와 일종의 부자(父子) 관계라고 할 수 있으리라.

 우리의 선인들이 선친의 좋은 점만을 기억했듯이,  새 정부도 과거 정부들의 좋은 점을 애써 기억하면서 그것을 새롭게 발전시키는 진정한 광풍제월의 길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마침 당선자 자신도 온갖 시비와 비방을 이겨내고 대통령에 뽑힌 만큼 그 길을 잘 내다볼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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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종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