蔡周易(채주역)       이   덕   일

다산 정약용은 '외심 윤영희에게 드립니다〔與畏心尹永僖〕'라는 글에서 '자신이 11·12세 무렵 부친 정재원이 집에서 하루에 '주역' 한 괘씩을 읽으면서 무릎을 치며 감탄하는 것을 봤으나 질문은 하지 못했다'면서 나중에 규장각 각신이 되었을 때 "비로소 성인(聖人:정조)에게서 '주역'을 배우게 되었음을 자축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부터 시작한 정조의 강론이 '상서(尙書)'에 이르렀을 때 부친상을 당하는 바람에 정약용은 정조에게 '주역'을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당대의 석학이었던 정헌(貞軒) 이가환(李家煥)에게 "다른 경서는 대략 통하지만 '주역'만은 알 수 없으니 어떻게 하면 알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이가환은 "나는 이미 '주역'은 알 수 없는 것으로 판단했으니 죽을 때까지 서로 묻지 마세"라고 답했다고 '정헌묘지명(貞軒墓誌銘)'은 전한다.

그래서 포기했던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다시 '주역'을 공부한다.

거의 식음을 전폐하고 몰두한 끝에 '주역사전(周易四箋)'을 쓸 정도로 통달했으나 점을 치기 위한 용도가 아니었다.

중형(仲兄) 정약전에게 보낸 편지에서 "저는 갑자년(1804)부터 '주역' 공부에 전심하여 지금까지 10년이 되었지만 하루도 시초(蓍草:점치는 풀)를 세어 점쳐 본 적이 없습니다"라면서 "내가 만약 뜻을 얻는다면 조정에 아뢰어 점치는 일을 금하게 하기에 겨를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내가 역상(易象)을 해석하는 것은 경의(經義)를 밝히려는 것이다"라고 말했듯이 그에게 '주역'은 점서(占書)가 아니라 성인의 뜻이 담긴 경서였다.

이가환은 정약용에게 "수십 대가(大家)의 '주역' 학설을 이야기하고는 모두 알지 못 하겠더라"고 토로하면서 "시골에 가면 종신토록 '주역'만 읽어 노주역(盧周易) 최주역(崔周易)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은데 자네도 장차 그리 되려는가?"라고 말렸다고 전한다.

숭례문 방화 피의자 채씨 또한 평생 '주역'을 공부해 철학관을 운영해 왔다 한다.

이 시대의 채주역(蔡周易)이 '양방(陽方), 리(離)괘'의 숭례문을 불태울 줄 누가 알았으랴.

오호통재(嗚呼痛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