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정신정 (沈靜神定)
"沈靜非緘黙之謂也(침정비함묵지위야) 침정(沈靜), 즉 고요함에 잠기는 것은 입 다물고 침묵한다는 말이 아니다.
意淵涵而態閑正(의연함이태한정) 뜻을 깊이 머금어 자태가 한가롭고 단정한 것이야말로
此謂眞沈靜(차위진침정) 참된 고요함이다.
雖終日言語(수종일언어) 비록 온종일 말을 하고,
或千軍萬馬中相攻擊(혹천군만마중상공격) 혹 천군만마(千軍萬馬) 중에서 서로를 공격하며,
或稠人廣衆中應繁劇(혹조인광중중응번극)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번잡한 사무에 응하더라도
不害其爲沈靜(해기위침정) 침정함에 방해받지 않는 것은,
神定故也(신정고야) 신정(神定) 곧 정신이 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一有飛揚動擾之意(일유비양동요지의) 한번이라도 드날려 뜻이 흔들리면,
雖端坐終日(수단좌종일) 종일 단정히 앉아
寂無一語(적무일어) 적막하게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而色貌自浮(이색모자부) 기색이 절로 들뜨고 만다.
或意雖不飛揚動擾(혹의수불비양동요) 혹 뜻이 드날려 흔들리지 않는다 해도
而昏昏欲睡(이혼혼욕수) 멍하니 졸린 듯한 상태라면
皆不得爲沈靜(개부득위침정) 모두 침정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명나라 여곤(呂坤·1536~1618)이 '신음어(呻吟語)'에서 한 말이다.
침정은 마음에 일렁임이 없이 맑게 가라앉은 상태다.
침정은 신정에서 나온다.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으면 번잡한 사무를 보고, 말을 많이 해도 일체의 일렁임이 없다.
이덕무(李德懋)는 '원한(原閒)'에서 이렇게 썼다.
"通衢大道之中(통구대도지중) 넓은 거리 큰길 속에도
亦有閒(역유한) 한가로움이 있다.
心苟能閒(심구능한) 마음이 진실로 한가롭다면
何必江湖爲(하필강호위) 어찌 굳이 강호나
山林爲(산림위) 산림을 찾겠는가?
余舍傍于市(여사방우시) 내 집은 시장 곁에 있다.
日出(일출) 해가 뜨면
里之人市而閙(이지인시이료) 마을 사람이 물건을 파느라 시끄럽다.
日入(일입) 해가 지면
里之犬羣而吠(이지견군이폐) 마을의 개들이 무리지어 짖는다.
獨余讀書安安也(독여독서안안야) 하지만 나는 홀로 책을 읽으며 편안하다.
時而出門(시이출문) 이따금 문밖을 나서면
走者汗(주자한) 달리는 사람은 땀을 흘리고,
騎者馳(기자치) 말 탄 사람은 내달으며,
車與馬旁午而錯(거여마방오이착) 수레와 말은 뒤섞여 얽혀 있다.
獨余行步徐徐(독여행보서서) 나만 홀로 천천히 걸음을 내딛는다.
曾不以擾失余閒(증불이요실여한) 일찍이 소란함으로 인해 나의 한가로움을 잃지 않으니,
以吾心閒也(이오심한야) 내 마음이 한가롭기 때문이다."
엉뚱한 데 가서 턱없이 찾으니 마음이 자꾸 들떠 허황해진다.
가만히 내려놓고 차분히 가라앉히는 것이 먼저다.
고요함은 산 속에 있지 않고 내 마음 속에 있다.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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