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발기행-高野山
여행에도 등급이 있다.
처음에는 물건 사는 재미로 다니는 여행이다.
국내에는 없는 질 좋은 상품이 해외에 있으면 이거 쇼핑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필자도 한때 일본 전자상가 거리를 많이도 돌아다녔다.
그다음에는 먹고 마시는 여행이다.
인생 뭐 있는가! 외국 나가서 멋진 풍광 보고 맛있는 음식 먹는 게 인생 낙이다.
미쉐린(미슐랭) 가이드가 이때 필요하다.
더 나아가면 역사 유적지 답사이다.
건축, 미술관, 박물관 투어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다가 여행의 궁극에 도달한다.
그게 무어냐.
영발기행(靈發紀行)이다.
영적인 에너지가 분출하는 지역을 여행해보는 것이 영발기행이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이다.
삶에서 영(靈)이 빠지면 우울증이 온다.
신령한 땅에서 올라오는 기운을 받고, 잡다한 근심 걱정거리를 털어버리고, 그 땅을 거쳐 간 정신세계의 고단자들 이야기를 듣고, 왠지 거듭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발바닥이 부르트면서도 한 달 정도를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이 이런 영발기행의 사례이다.
일본의 고야산(高野山)도 영발로 유명한 산이다.
약 3만명이 거주하는 해발 850m의 분지를 1000m 높이의 봉우리 8개가 둘러싸고 있는데, 구카이(空海) 대사가 터를 잡은 단조가란(壇上伽藍)은
연꽃의 중심에 해당하는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한국식의 풍수작명을 해 본다면
'운중연화(雲中蓮花)' 자리였다.
고야산에 가보기 전에는 한국의 설악산이나 가야산처럼 불뚝 솟은 바위절벽으로 이루어진 산으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바위산의 강력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고 온화하면서도 장중한 느낌을 주는 기운이 뭉쳐 있는 영지(靈地)였다.
골산(骨山)이 아니고 육산(肉山)이었다.
이런 터가 오래간다.
8개의 봉우리에서 가 운데를 향하여 자기장(磁氣場)을 발사하고 있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중국의 구화산(九華山)과 비슷한 산이었다.
이 터를 어떻게 잡았을까.
구카이 대사가 금강저(金剛杵)를 공중에 날려 그 금강저가 떨어진 곳을 터로 잡았다고 전해진다.
한국 송광사(松廣寺)에서는 오리를 날려 그 오리가 내려앉은 곳을 절터로 잡았다는 전설이 있다.
고야산은 압력밥솥 같은 터였다.
조선일보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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