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계, 중년계, 숙년계
고려 때 보조국사(普照國師·1158~ 1210)가 저술한 '수심결(修心訣)'이라는 책이 있다.
20대 시절 방학 때가 되면 도 닦는다고 산속 암자에 들어가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첫 대목이 잊히지 않는다.
'삼계열뇌(三界熱惱)가 유여화택(猶如火宅)이어늘.'
'삼계의 뜨거운 번뇌가 불난 집처럼 불타고 있다.'
여기서 삼계는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를 가리킨다.
우주 전체가 고민에 싸여 있다고 이해했다.
21세기 한국의 삼계는
청년계,
중년계,
숙년계(熟年界)로 보인다.
20대에서 30대 초반까지는 청년계이다.
청년계의 메카는 노량진이다.
취업 준비 때문이다.
그들의 목표는 공무원과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이다.
취업 외에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 인구가 대략 40만명에 육박한다고 들었다.
노량진에서 김밥 하나 사 먹고 학원 책상에 들러붙어 온종일 수험서 외우는 게 한국 청년의 표상이다.
공무원과 대기업이 그렇게 좋은 '안전빵'이란 말인가?
지구는 자전과 공전을 하기 때문에 흔들린다.
이 세상에 안전빵은 없다고 본다.
중년계는 40대들이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언제 해고당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50세 정도 되면 회사 나가는 게 정석이다.
이때를 대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를 놓고 불안과 번뇌에 싸여 있다.
대책 중의 하나가 글쓰기 학원에 다니는 일이다.
글 쓰는 기술을 익혀서 책을 내는 게 목표다.
책을 내서 이게 어느 정도 알려지면 여러 매체에 글을 쓰고 대중 강연을 해서 먹고산다는 전략이다.
글쓰기 수업료는 다양하지만 3~4개월에 한 500만원씩은 되는 모양이다.
글쓰기는 1대1 지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직장에 다니는 40대들은 이 정도의 수업료는 투자라고 생각한다.
숙년계는 50대 중반 이상 연령층이다.
사업 실패, 이혼
, 죽을병에 걸려 인생 파탄 난 사람 등을 다루는 TV 프로그램을 집중적으로 시청한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심정으로 산에 들어가서 장작불 때고 더덕, 산나물, 계곡물 먹고 산다.
이런 유(類)의 프로를 보면서 숙년계는 '나도 최악의 경우에 저렇게 살면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겠구나'하고 번뇌를 식힌다.
삼계가 화택(火宅)처럼 불타고 있다.
조용헌
조선일보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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