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의 세계는 어쩌면 음울하다.

늘 싸움이 번졌고, 시도 때도 없이 달려드는 재해도 삶을 곤혹스럽게 했기 때문이다.

그 싸움을 바라보는 눈, 고난을 피해 생존의 토대를 지키고자 하는 시선이 한자에는 가득하다.

 
‘전쟁’은 한자의 초기 세계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이어 가는 주제였다.

한자가 만들어졌던 중국의 대륙은 전화(戰火)가 퍽 빈번하게 일어났던 땅이다.

그래서 한자를 뜯어보면 사람과 집단끼리의 크고 작은 다툼을 알리는 글자가 풍성하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우선 ‘성(城)’을 들여다보기로 하자.

이 글자는 굳건히 쌓은 흙담이나 성곽, 또는 망루에 창(槍)으로 보이는 무기가 등장한다.

담장이나 성곽 등은 전쟁에서 제 목숨을 부지하는 큰 기반이다.

그곳에 살상(殺傷)용 무기를 쥔 사람이 거니는 모습이다.

이로써 城(성)이라는 글자는 새김이 일찍 굳어진다.
 
비슷한 흐름을 보이는 글자도 많다. 우선 國(국)이다.

지금은 ‘나라’ ‘국가’라는 개념으로 정착했지만, 초기 글자꼴은 닥칠지 모르는 싸움에 대비하는 모습이 완연하다.
 
싸움에 대비해 쌓은 담장은 성과 곽(郭)으로 나뉜다.

성벽 바깥에 있어 둘레가 더 큰 담장을 보통 ‘곽’으로 지칭한다.

둘을 한꺼번에 이르면 성곽(城郭)이다.

或(혹·國의 원래 글자)에서 발전한 國(국)의 바깥 네모는 ‘곽’에 해당한다고 본다.

그 안에 있는 작은 네모가 ‘성’이다.
 
성과 곽이 둘러져 있는 공간에 등장하는 다른 글자 요소는 창의 일종인 戈(과)다.

따라서 큰 곽 안에서 작은 성을 오가며 이곳 안팎을 경계하고 지키는 군인의 모습이다.
 
일정한 힘이나 기술 등이 미치는 곳을 영역(領域)이라고 한다.

뒤의 글자 域(역) 또한 ‘성’의 글자 생김새와 유사하다.

성채를 가리키는 작은 네모가 등장하고, 이어 창이 나온다.

역시 성의 테두리를 지키는 군인, 또는 그런 행위다.
 
방위(防衛)라는 단어의 ‘지키다’는 새김을 지닌 衛(위)라는 글자도 그렇다.

양쪽으로 둘러싼 글자 요소는 行(행)이다.

 ‘오고 가다’ 또는 ‘큰길’을 지칭한다.

가운데 있는 韋(위)의 초기 꼴 역시 성을 지키는 모습이다.

가운데 작은 네모인 성 주위를 오고 가는 행위나 그런 사람들이다.
 
이와 같은 흐름을 충분히 담은 글자가 衛(위)다.

길을 오가며 성을 지키는 동작이다.

초기 글자꼴을 보면 아예 네 개의 발자국이 성곽(네모) 주위를 거니는 모습이다.

그 둘레를 사방으로 에워싸고 벌이는 방어의 행위를 圍(위)라고 하다가 나중에는 ‘둘러치다’ ‘포위하다’는 뜻으로 발전했다.
 
각 영역에서 이뤄지는 개개인의 행위는 집단으로 모아진다. 인류 초기의 삶도 개별적인 생존이 집단으로 확산하면서 그 여럿의 요소를 체계적으로 묶어 갈 필요가 있었을 법하다.

영어로 society라고 적은 단어를 동양은 왜 ‘사회(社會)’라는 단어로 옮겼을까.
 
여기에 등장하는 社(사)가 우선 궁금해진다.

society 번역에 적당한 한자 단어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았던 듯하다.

서구와 동양이 접점을 크게 형성한 19세기 무렵 중국은 society라는 용어를 제대로 옮기지 못했다.

중국은 우선 이를 ‘무리’의 지칭인 群(군)으로 옮겼다.
 
society를 社會(사회)라는 단어로 처음 옮긴 쪽은 일본이라고 본다.

이 社(사)는 제례와 주술에서 유래했다.

본래 글자꼴은 땅, 또는 땅에 깃든 신령이었으리라 추정한다.

 땅은 동양사회의 사람들이 삶을 지탱한 근간이다.

그래서 일찌감치 그에 대한 숭배가 빈번했다.
 
이 社(사)의 초기 글자꼴은 흙을 쌓은 모습, 그로부터 어떤 제례가 펼쳐지는 상황을 가리키다가 결국 땅 신(神)을 향한 숭배로 이어졌을 듯하다.

그로부터 개개인이 모여 이루는 집단을 가리키는 글자로 발전했다고 본다.
 
전란과 재난을 피해 늘 이동했던 중국 땅의 사람들은 요즘도 묘(廟)를 형성하고 그곳에 모여들어 지역의 중요 행사를 벌이는 습속이 있다.

여기서 廟(묘)는 땅의 신에 제례를 올렸던 社(사)의 연역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중국인의 그런 모임과 행사가 ‘묘회(廟會)’다.

이런 맥락에서 society를 사회(社會)로 옮기는 상상력이 발동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社(사)라는 글자의 우선 새김은 ‘모이다’다.

글자의 조어 행렬을 봐도 그렇다.

모임을 이루는 행위는 결사(結社)다.

그룹이나 동아리 정도의 모임은 보통 사단(社團)이라고 적기도 했다.

옛 선비들이 시를 짓기 위해 이뤘던 모임은 시사(詩社), 글 짓는 경우는 문사(文社)라고 불렀다.
 
그런 흐름에 끼어들어 서로 교제하는 일은 사교(社交), 이익을 위해 모여 이루는 집단은 회사(會社), 같은 이해관계에 따라 뭉치는 일이나 집단은 당사(黨社)다.

일본은 국가 등에 헌신한 사람의 위패를 모시는 곳에 신사(神社)라는 이름을 붙였다.
 
성(城)과 社(사)는 인류가 이루는 가장 큰 집단, 국가를 상징하는 차원으로 발전했다.

 ‘성’은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자신의 안전을 지키는 국방의 보루(堡壘), ‘사’는 그렇게 발전한 큰 집단인 국가나 정부 등의 의미다.
 
이를 반영한 대표적인 단어가 사직(社稷)이다.

보통은 왕실의 조상에 제례를 올리는 종묘(宗廟)가 앞에 붙어 ‘종묘사직’이라는 표현으로 등장한다.

 ‘사직’은 땅의 신과 농업의 신(稷)을 제사 지내는 장소를 지칭하다가 ‘종묘’와 함께 국가 또는 정부의 상징으로 발돋움했다.
 
‘사’가 ‘성’과 합쳐져 국가 위기를 가리키는 성어가 있다.

성호사서(城狐社鼠)다.

국가의 안전을 보장하는 튼튼한 성채에 스며든 여우(狐), 나라를 움직이는 굳건해야 할 토대에 숨어 사는 쥐(鼠)를 지칭한다.
 
성벽은 그 틈을 파고들어 사는 여우로 인해 무너질 수 있다.

당당해야 할 국가라는 건축물은 그 안에 숨은 쥐로 인해 붕괴에 직면할 수 있다.

그를 우려하고 경계하는 성어가 바로 ‘성호사서’다.
 
그런 한자의 맥락을 끌어들여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 결국 우리의 과제다. 급

변하는 안보 환경 속 우리의 국방은 문제가 없을까. 정치와 행정, 나아가 우리 사회의 빈틈은 어디일까.

그 안에 숨어든 ‘여우’와 ‘쥐’는 누구일까.

진지하게 늘 되묻지 않을 수 없는 문제다.

 하영삼·유광종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장·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중앙선데이] 입력 2019.01.26 00:21